인간의 손가락은 고대 물고기의 항문 구조가 진화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람 손가락 및 발가락은 물고기 지느러미가 진화한 것으로 여겨져 왔기에 이번 연구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미국 및 스위스 고생물학자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5일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공식 발표했다. 이들의 조사 성과는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먼저 소개됐다.
연구팀은 약 3억7500만 년 전 데본기 후기에 서식한 고대어 틱타알릭 조사에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아냈다. 손가락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제어 프로그램이 데본기 고대 물고기의 배설과 생식을 겸하는 총배출강(총배설강) 형성에 사용됐다는 점이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 고생물학자 크리스토퍼 볼트 박사는 "진화는 때때로 예상치 못한 길을 따라간다. 우리의 손가락과 발가락의 뿌리는 지금까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며 "이번 발견은 고대 물고기의 항문 구조가 진화 과정에서 포유류의 발가락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동안 포유류의 손(발)가락은 물고기 지느러미가 진화했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2020년 캐나다에서 발견된 데본기 고대어 엘피스토스테게 왓소니(Elpistostege watsoni)의 지느러미에서 손가락 뼈와 비슷한 구조가 확인되면서 이 가설은 힘을 받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쥐와 제브라피시 등 진화적으로 거리가 먼 동물 2종이 비교됐다. 연구팀은 각 배아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면서 발가락 형성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가 몸의 어디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들여다봤다.
특히 연구팀은 Hoxd13 유전자에 주목했다. 이는 포유류의 손·발가락 형성에 필수적으로, 쥐에서는 이 유전자가 사지 끝에서 활성화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 유전자는 제브라피시 같은 물고기에도 존재하지만 이들에게는 발가락이 없다.
크리스토퍼 박사는 "쥐와 제브라피시 배아를 비교하다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발가락 형성과 관련된 유전자 Hoxd13이 어류에서는 지느러미가 아닌 배설과 생식을 담당하는 총배출강에서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총배출강은 배설과 생식을 하나의 개구부에서 처리하는 구조로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등에서 널리 볼 수 있다. 포류유의 엉덩이 같은 기관인데, 이번 실험은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발가락과 엉덩이에 같은 유전자가 사용된 점을 보여줬다.
조사 결과 열쇠는 Hoxd13의 기능을 제어하는 유전자 제어 네트워크였다. 일종의 스위치로, 유전자가 일하는 장소나 타이밍을 활성 또는 비활성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쥐의 발가락과 제브라피시의 총배출강 모두에서 동일한 유전자 제어 네트워크가 Hoxd13을 활성화했다.
크리스토퍼 박사는 "유전자가위 기술로 Hoxd13을 제어하는 영역을 삭제하자 쥐는 해당 제어 영역이 손실되면 Hoxd13이 작동하지 않았고 발가락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며 "제브라피시의 경우 지느러미에 변화가 없었지만 총 배출강 형성이 방해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박사는 "Hoxd13의 제어 네트워크는 본래 총배출강의 형성에 관여했으나, 진화 과정에서 발가락으로 전용됐을 것"이라며 "진화는 항상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아니며,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냄을 이번 연구가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