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종의 새가 꽃가루를 옮기도록 화려한 꽃을 포기한 덩굴식물이 확인됐다.

미국 필드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지난달 말 공식 채널을 통해 대만 중부 시터우 삼림지대에 자생하는 다년생 덩굴식물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Aeschynanthus acuminatus)의 신기한 생태를 소개했다.

대만을 비롯해 일본 오키나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에 자생하는 이 식물은 수분하는 새를 끌어들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빨간 립스틱처럼 강렬한 붉은색 꽃을 피운다. 

싹이 트기 전의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의 꽃. 빨간 립스틱 같다고 해서 립스틱 바인으로 불린다. <사진=필드자연사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아쿠미나투스류는 모두 새에 의해 꽃가루받이(수분)가 이뤄지는 조매화”라며 “이 식물은 새가 쉽게 발견하도록 붉은색 꽃을 피워 립스틱 바인(lipstick vine)으로 불리지만 우리가 대만에서 본 종은 꽃 색깔이 녹색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식물의 빨간 꽃은 가늘고 긴 부리를 가진 태양새의 수분에 최적화됐는데, 시터우 삼림지대에 자생하는 개체들은 꽃의 색이 녹색으로 변했다. 연구팀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시터우 삼림지대의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를 채취, 계통수를 자세히 분석했다. 아울러 다른 국가 자생지를 찾아 꽃의 색이 변했는지 살폈다. 

그 결과, 시터우 삼림지대에는 태양새보다 부리가 짧은 동박새 등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이 꽃을 접촉했다. 연구팀은 이곳 동박새의 이마에 묻은 꽃가루가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라는 것도 확인했다.

색이 확연하게 달라진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의 꽃 <사진=필드자연사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이 신기한 식물은 태양새가 풍부한 아시아 대륙 쪽에 많이 서식하는데, 대만 외의 지역에서도 녹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며 “원래 식물학에서는 식물이 꽃가루 매개자가 없는 곳으로 이동할 때, 살아남기 위해 현지의 새에 맞춰 진화한다고 여겨졌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DNA 분석 결과 이 규칙은 철저하게 어긋났다. 계통수를 조사해 보니, 시터우의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는 대륙에서 이미 녹색으로 진화한 집단과 갈라져 바다를 건너왔다”며 “이는 섬에 건너가기 훨씬 전 태양새가 많은 대륙 쪽에서 이미 독자적인 진화를 했다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시터우 삼림지대의 아에스키난투스 아쿠미나투스 <사진=필드자연사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이런 능동적 진화가 보다 다양한 종의 새에 수분을 맡기는 생존 전략이라고 결론 내렸다. 태양새에 의존하는 관계를 스스로 끊고 더 많은 종의 새들을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조사 관계자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태양새만으로는 수분이 불충분한 상황이 벌어졌고, 자연도태를 통해 다양한 새를 꽃가루 매개자로 삼는 전략을 세웠을 것”이라며 “이번 발견은 식물의 진화가 의외로 주체적인 전략을 가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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