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 의해 우물에 던져진 중세 남성의 유골 분석 과정에서 북유럽에 전해지는 왕가의 전설이 일부 사실로 입증됐다. 역사학과 고고학, 유전학이 동원돼 풀어낸 800년 전 북유럽의 수수께끼에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노르웨이과학기술대학교(NUST) 마틴 엘리가드 교수 연구팀은 30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노르웨이에 전해 내려오는 스베리 사가(Sverris Saga) 속 대목 일부가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스베리 사가 가운데에는 중세에 습격당한 성의 우물에 한 남자의 시신이 던져지는 대목이 등장한다. 실제로 우물에서 발견된 유골의 DNA 분석에 나선 연구팀은 인물의 용모나 출신지 등이 기록과 일치하는 것을 알아냈다.
마틴 교수는 "오래된 역사 문헌에 기술된 인물이 실제로 발견된 것은 노르웨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고대 노르드어로 기술된 스베리 사가는 초대 노르웨이 왕 스베리르 시구르다르손의 치세(1177~1202년)를 자세히 다뤘다. 이는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 노르웨이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전했다.
이어 "기록에는 1197년 노르웨이 중부 트론하임 근교 스베레스보리 성이 습격당해 한 남성의 시신이 우물에 던져지고 돌로 막히는 대목이 나온다"며 "이는 중요한 수원인 우물물을 오염시키기 위한 적의 전략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남성의 유골은 1938년 스베레스보리 성의 우물 터에서 발견됐다. 웰맨(Well-man)이라는 임시 이름이 붙은 유골은 곧바로 전시돼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가 최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등이 이뤄졌다. 연구팀은 최근 개발된 고도의 유전자 배열 해독 기술을 통해 남성의 정체를 들여다봤다.
마틴 교수는 "유골은 2014년과 2016년 이뤄진 조사에서 이미 사망 시 30~40세 남성임이 확인됐다"며 "이번에 우리는 치아 샘플을 이용해 게놈 배열을 분석했고, 남성이 파란 눈과 금발 또는 연한 갈색 머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교수는 "아주 오래된 게놈을 해석하기 위해 현대 노르웨이인이나 다른 유럽인의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참조했다"며 "우리 생각이 맞는다면 유골은 약 800년 전의 것이며, 그 조상은 현재의 노르웨이 최남단 베스트아그데르 출신"이라고 언급했다.
학계는 스베레스보리 성의 우물에서 수습된 유골이 스베리 사가에 기록된 인물임을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정황 증거는 상당히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트론하임 대성당 인근에 묻힌 것으로 알려진 노르웨이 수호성인 성 올라프 등 역사상 유명인들의 유골 샘플도 검사할 계획이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