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와 에게해 제도에 걸쳐 번영을 누린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유한 농장을 지키기 위해 사촌간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유전자 분석 결과 드러났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는 16일 국제 학술지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소개된 논문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촌끼리 결혼하는 습관을 가졌으며, 이는 소유한 토지 및 농장과 관련이 깊다고 소개했다.

연구소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에게해 주변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게놈을 100개 이상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약 4000년 전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 섬을 비롯한 에게해 제도에서 사촌간 결혼이 매우 흔했다는 사실은 역사학적으로 의미있는 발견이라는 게 연구소 입장이다.

DNA 해석을 통해 그려진 고대 그리스 가계도. 주황색과 빨간색은 1촌과 2촌 사이의 결혼을 의미한다. <사진=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공식 홈페이지>

이런 발견이 가능한 배경에는 진보한 DNA 해석 기술이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약 100년 전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로 유명한 미케네 수혈묘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학자들은 거기 묻힌 사람들의 관계를 그저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는 고대 그리스 청동기시대 에게해 사람들의 근친혼은 물론, 미케네 문명을 영위한 가족의 유전적 가계도도 작성했다"고 전했다.

발달한 DNA 해석 기술은 기후 조건 상 DNA가 보존되기 어려운 그리스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오래된 유전자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줬다. 기원전 16세기 융성한 미케네 문명을 누린 집안의 가족관계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사촌간 결혼은 현대사회에서는 지역에 따라 근친혼으로 여겨 금지한다"며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고대인의 게놈은 1000개 이상 공개돼 있는데 이런 대규모 근친혼은 고대 세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과 올리브 등 대규모 농장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장려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pixabay>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사촌 간의 결혼을 장려한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연구팀은 자신들의 영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지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당시 농지가 상속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근친혼이 성행했다고 볼 수도 있다"며 "근친혼이 관습으로 굳어지면서 일족은 한 땅에서 계속 살아가게 됐고, 이는 전통적인 올리브와 와인 재배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향후 고대 게놈의 추가 해석을 통해 그리스인들의 가족 구성에 얽힌 사연을 더 밝혀낼 계획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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