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만 먹어치우며 번식하는 생명체가 최초로 발견됐다. 스스로 힘으로 증식할 수 없는 바이러스는 동식물에 침투,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번 발견은 바이러스를 능동적으로 방어할 열쇠로 여겨진다.
미국 네브래스카대학교 링컨 캠퍼스 연구팀은 27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논문에서 오직 바이러스만 먹고 번식하는 생명체를 소개했다.
연구팀이 특정한 것은 주로 연못 속에 서식하는 미생물 '할테리아(Halteria)'다. 연구팀은 할테리아 한 마리가 하루에 최대 100만 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이러스를 먹어치우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발견은 우연히 이뤄졌다. 연구팀은 담수 녹조류에 감염되는 클로로바이러스를 조사하던 중 수중에 서식하는 생물 일부가 바이러스를 에너지원으로 삼지 않을까 의심했다. 이에 연구팀은 연못 물을 채취한 뒤 여러 미생물을 넣고 더 많은 양의 클로로바이러스를 투입했다.
그 결과 크기가 아주 작은 편모충의 일종인 할테리아가 클로로바이러스를 마구 잡아먹었다. 무해한 형광 염료로 DNA에 마커를 붙인 클로로바이러스 때문에 할테리아의 위 주머니가 밝게 빛났다.
조사 관계자는 "할테리아를 넣은 담수는 클로로바이러스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할테리아의 개체도 증가했다"며 "반면 클로로바이러스가 없는 곳에서는 할테리아가 증식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를 통해 할테리아가 바이러스를 에너지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할테리아 자체가 처음 발견된 것도 아니고, 미생물이 바이러스를 먹도록 진화한 것도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바이러스만 섭취하는 미생물이 특정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 할테리아 한 마리는 하루에 1만~100만 개의 바이러스를 먹었다. 일반적인 작은 규모의 연못으로 따지면 할테리아들이 먹어치우는 클로로바이러스의 수는 하루 100조~1경 개에 이른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핵산 및 질소와 인 등으로 구성된다. 할테리아가 엄청난 양의 클로로바이러스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이 미생물이 담수의 녹조 이상 증식을 방지, 지구의 탄소 순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팀 입장이다.
연구팀은 할테리아처럼 바이러스만 골라 잡아먹는 생물이 또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