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얼굴이 악마처럼 보이는 기묘한 증례가 학계에 보고됐다. 환자가 실제 마주한 상대방의 얼굴을 재현한 이미지도 공개돼 관심이 쏠렸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심리학자 겸 뇌과학자 안토니오 멜로 박사 연구팀은 23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주변 인물의 얼굴이 악마처럼 변형되는 59세 미국 남성의 사연을 전했다.
이 남성은 2020년 11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뒤틀려 보였다. 눈과 코, 입, 귀가 얼굴 뒤쪽에서 일부러 당긴 것처럼 늘어졌고 이마와 뺨에는 주름이 뚜렷했다.
남성을 조사한 연구팀은 지난해 얼굴인식장애 중 하나인 안면변형시(prosopometamorphopsia) 판정을 내렸다. 다행히 남성은 주변의 이해와 도움 덕에 처음보다는 심적 안정을 찾았다. 증상은 여전하지만 상대를 대할 때 덜 놀라게 됐고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안토니오 박사는 “남성은 매우 드문 시각장애가 아닌가 한다”며 “안면변형시는 사람의 얼굴 일부 또는 전체가 일그러져 보이는 장애로 대부분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회복되지만 남성은 몇 해나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얼굴인식장애는 여러 종류인데, 대부분 증례 자체가 부족하고 남성의 경우 그중에서도 희귀하다”며 “더욱이 남성은 마주하는 실제 인물의 얼굴만 일그러져 보이고, 사진은 아무렇지 않아 수수께끼가 많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남성의 설명을 토대로 그가 보는 상대방 얼굴을 직접 재현해 봤다. 남녀 자원봉사자를 무작위로 모집하고 남성과 한 명씩 대면하게 했다. 이후 남성의 시점에서 각 자원봉사자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미지를 뽑아냈다.
안토니오 박사는 “얼굴인식장애 연구자들은 상대의 안면 이미지를 처리하는 뇌 기능의 부전을 의심해 왔다”며 “머리의 외상이나 뇌졸중, 간질, 편두통과 관련된 사례가 실제 있지만, 어떤 환자는 뚜렷한 뇌 구조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사는 “이번 남성의 경우 43세 때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찧어 중상을 입었고, 사고 4개월 전에는 얼굴인식장애의 원인으로 추측되는 일산화탄소 중독까지 겪었다”며 “자기공명영상(MRI) 스캔에서 뇌의 왼쪽에 병변이 발견됐는데 이게 장애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연구팀은 시각에 문제가 있는데도 전문의로부터 무조건 정신병 진단을 받는 등 안면변형시에 대한 학계의 이해도 떨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변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볼까 두려워 안면변형시를 숨길 수 있는 만큼, 환자나 학계 모두의 적극적인 연구 참여를 촉구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