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에는 일반의 상상을 넘는 수많은 불치병과 미스터리한 질환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환상통'은 딱히 치료법이 없는데도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계속 늘면서 대책마련이 요구되는 분야다. 

환상통은 손발이 잘려나간 사람들 중 50~80%에서 관찰되는 병이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남성의 성기, 여성의 유방 등 몸에 붙어있다 잘려나간 모든 부위에서 관찰된다. 이미 잘리고 없는 부위에서 통증, 특히 참기 어려운 가려움을 느끼거나 해당 부위가 실존한다고 여기는 희한한 병이다. 오직 당한 사람만이 알며, 설명을 듣는 일반 사람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때문에 헛통증이라고도 부르고, 유령 같은 통증이라 해서 영어로는 '팬텀 페인(phantom pain)'이라 칭한다. 환지통(phantom limb pain)도 비슷한 말이다.

영화 '월드워Z'의 한 장면. 제리(브래드 피트)는 좀비에 물린 군인 세겐의 팔을 지체없이 잘라버린다. <사진=영화 '월드워Z' 스틸>

외과적 손상에 정신과적 이상증세가 결합된 환상통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외과적 손상에 대한 연구만 활발했다. 의사들은 잘려나간 부위의 신경과 뇌의 연관에만 집중한 탓에 제대로 된 치료법이 나오지 않았다. 환상통 환자들의 말 자체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보니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정신과적 증세마저 악화되는 환자가 부지기수였다.

절단된 신체 부위에 신경 말단 덩어리가 생성되고, 여기서 받아들인 자극이 뇌를 오작동하게 만든다는 기존 환상통의 정의는 수정되기 시작했다. 신경 말단에 들어간 부정확한 신호가 뇌의 착란을 일으킨다는 그간의 환상통 메커니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사들이 하나둘 늘었다. 

환상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도 뇌의학자 라마찬드란 <사진=University of California Television(UCTV)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Releasing Phantom Limb Pain' 캡처>

특히 일부 뇌의학 전문가들은 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시야를 넓혀갔다. 뇌 스스로가 잘려나가고 없는 신체에 대해 이상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적 치료법이 개발됐는데, 2004년 이후부터 거울운동치료법(Mirror exercise therapy)이 주목 받고 있다.

한림대 의대 재활의학교실의 2008년 학술보고서 '화상 절단 후 환상통의 거울운동치료의 효과'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2006년 이래 해외에서 다양한 임상치료에 응용되고 있다. 환상통 치료에 의미있는 효과가 있을뿐 아니라 복합국소통증증후군 치료에도 적용된 사례가 있다.

보고서가 소개한 한 사례를 보자. 외국의 한 연구팀은 거울운동치료법을 화상에 의한 절단자에 대해 4주간 시행하고 VAS(visual analog scale, 환자가 통증 정도를 표기하는 것)값 변화를 정리했다. 

그 결과, 2주 평가에서는 VAS가 평균 10에서 7 정도로 감소했다. 4주가 경과할 무렵 VAS는 평균 5로 절반 수준까지 뚝 떨어졌다. 특별한 부작용이 없는 데다 주사 등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호전된 사실이 관찰됐다. 외과적, 물리적인 치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의학계에선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여졌다.

거울운동치료법은 인도 출신의 세계적 뇌의학자 라마찬드란(69)이 처음 제시했다. 라마찬드란은 팔이 잘린 환자로 하여금 거울을 마주보게 하고, 없는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면서 뇌 반응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환상통의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이 치료법을 적극 개발했다. 의학계는 완벽한 치료법이 없는 환상통이지만 라마찬드란의 발견으로 인해 한 줄기 희망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메탈기어 솔리드 5: 더 팬텀 페인 <사진=코나미 재팬>

이처럼 환상통은 일반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환자들로선 치료약이 절박한 질환이다. 그렇다보니 여러 방면에서 관심을 받아왔고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심지어 게임에서도 다뤄졌다. 일본의  유명 밴드 T.M.레볼루션(T.M.Revolution)은 2014년 '팬텀 페인'이라는 싱글앨범을 내놨고 기동전사 건담시드 OVA 중 팬텀페인이라는 가상의 부대가 등장한다. 코나미의 인기 게임 '메탈기어' 시리즈 중에 '팬텀 페인'을 부제로 붙인 작품이 있고, 미드 '하우스'나 독일 영화 '환상통' 등 숱한 매체가 해당 질환을 다뤘다. 

참고로 환상통은 스스로 사지를 잘라내려 하는 희한한 정신질환과도 연결된다. 일명 사지절단강박장애(BIID, Body Integrity Identity Disorder, 신체완전일체성장애) 또는 사지절단애증(apotemnophilia) 환자들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의학계는 이들이 자의에 따라 신체를 훼손한 뒤 여지없이 환상통에 시달린다는 보고 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