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을 먹기 위해 어두운 거리로 나선 사람들. 그들은 왜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학자들은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크게 역사·문화적 카니발리즘과 병리학적 카니발리즘으로 대별한다.

병리학적 카니발리즘을 다룬 영화 '한니발'의 한 장면 <사진=영화 '한니발' 스틸>

병리학적 카니발리즘은 비뚤어진 욕망이 부른 식인이다. 병리학적 식인의 뚜렷한 특징은 사회적 식인과 달리 현대에서도 심심찮게 사례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주로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 등에 따른 식인이 TV나 신문을 통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살인에 따른 병리학적 식인을 성욕과 연관 짓는다. 비뚤어진 성욕을 가진 사람들은 소유욕이 아주 강한데, 일부 살인마들은 희생자의 시체를 먹으며 성욕과 소유욕을 해소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을 떨게 한 살인마 알버트 피쉬
알버트 피쉬는 1920년대 무수한 어린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입증된 사건이 16건이라고 발표했지만 피쉬는 자신이 죽인 피해자가 100명에 이른다고 태연히 말했다. 나중에 그를 면담한 정신과의사는 피해자가 4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했다.
피쉬는 경찰 조사에서 오븐에 구운 소녀의 엉덩잇살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맛이라고 진술해 공분을 샀다.

■밀워키의 악마 제프리 다머
제프리 다머는 1990년대 17명을 살해, 시체를 냉장고에 보관한 뒤 꺼내 먹은 사실이 드러나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다머는 잘라낸 시체 각 부분에 포르말린을 바른 뒤 진열하기도 했다.

다머의 집을 급습한 경찰이 냉장고 문을 열자, 그곳에는 얼어붙은 팔다리와 장기가 가득했다. 다머의 집안 풍경은 그야말로 도살장이었다.

사건이 밝혀진 뒤 TV에 출연한 다머는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희생자를 죽이고 사체를 먹은 것은 그들이 미웠기 때문이 아니다. 나와 일체가 되게 하기 위해 그들을 먹었다. 당시 나는 몸이 터질 듯 강한 성적 흥분상태였다.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인 상태에서 나는 저항할 수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사체를 먹음으로써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구소련을 발칵 뒤집은 살인귀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1978년부터 1990년에 걸쳐 소년소녀만 골라 53명을 살해했다. 모든 희생자는 치카틸로에 의해 겁탈 당한 뒤 죽었고, 모두 그에 의해 잡아먹혔다. 법원에서 그가 남긴 말은 구소련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녀의 혀를 이로 끊어내 씹을 때 형언할 수 없는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 기분을 계속 느끼기 위해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치카틸로의 변태적 행위는 유년시절 겪은 성적 콤플렉스가 원인이었다. 학자들은 병리학적 카니발리즘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이 치카틸로처럼 어렸을 때 심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통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식인귀 아민 마이베스
세계를 경악케 한 이 식인귀는 법정에서 “피해자와 합의 하에 식인을 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조사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드러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마이베스는 인터넷 카니발리스트 게시판에 자신에게 잡아먹히고 싶은 18~30세의 건장한 남성을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신기하게도 그의 광고를 보고 찾아온 남성이 있었다. 동성애자였던 유르겐 브란데스는 스스로 마이베스의 집을 찾아갔다. 마이베스는 브란데스와 합의한 뒤 그의 성기를 잘라 구운 뒤 함께 먹었다. 이후 마이베스는 브란데스를 살해했고, 그의 시체를 조리해 먹었다. 이 모든 것은 사전에 브란데스가 합의한 내용이었다.

마이베스의 컴퓨터를 조사한 경찰은 “당신에게 잡아먹히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견딜 수 없다. 빨리 만나고 싶다”고 적은 브란데스의 이메일을 발견했다.

■파리의 식인귀 사가와 잇세이 
동양권에서는 일본 출신 사가와 잇세이(63)가 식인마로 유명하다. 1977년 프랑스 파리 3대학으로 유학을 간 그는 1981년 6월11일 같은 대학원 네덜란드 여학생을 총으로 살해한 뒤 인육을 먹은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사가와는 여성에게 집요하게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살해해 인육을 먹기에 이르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현지 법원은 사가와가 범행 당시 심신상실, 즉 심신장애로 변별력이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사가와는 1984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 언론들은 그의 소식을 대부분 다루지 않았으나, 해외에서는 ‘사람을 먹은 일본인’ ‘파리의 살인귀’ 등 그에 관한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카니발리즘은 왜 사라졌을까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카니발리즘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중범죄로 분류한다. 

과거 전통으로 인식되던 카니발리즘이 사라진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개발에 따른 경제성장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사람을 죽여 잡아먹는 것보다 값을 치르고 사서 즐기는 게 훨씬 간편하다는 의미다.

카니발리즘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수없이 많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식인을 원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고기 대신 인육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어떤 경우라도 단 하나도 없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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