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자연발화(Spontaneous human combustion, SHC), 줄여서 인체발화라고 일컫는 불가사의한 현상은 2000년대 초 국내 방송에도 소개되며 관심을 얻었다. 말 그대로 인체가 특정한 이유 없이 불타는 현상인데,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과학계의 대표적 숙제로 꼽힌다.

사실 인체자연발화의 역사는 300년이 넘을 정도로 결코 짧지 않다. 물리학자와 화학자, 생물학자, 의사 등 다방면의 지식인들이 그 원인을 알아내려 노력했다. 1799년, 프랑스 의사 피에르 레어(1769~1830)는 아쉬운 대로 각지에서 보고된 인체자연발화의 유형을 종합해 인체자연발화의 12가지 공통점을 밝혀냈다. 그해 역사 잡지 라팜스 쿼틀리(Lapham's Quarterly)에도 실린 아래의 12가지 리스트는 오늘날의 SHC 연구에도 적용되고 있다. 

■인체자연발화의 공통점과 금주령
①60세 이상 고령자에게 발생
②뚱뚱한 사람에게 발생
③거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발생
④희생자 중 알코올 의존증이 많음
⑤남성보다 여성이 많음
⑥현장에는 양초나 벽난로 같은 불씨가 발견
⑦발화에서 연소까지 매우 빠름
⑧불을 끄기 굉장히 어려움
⑨불길이 일반 화재에 비해 맹렬함
⑩주변이 두껍고 노란 기름으로 뒤덮임
⑪몸이 먼저 타며, 머리와 팔다리는 대개 손상이 적음
⑫날씨가 좋은 날, 여름보다 겨울에 발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체발화현상 <사진=pixabay>

의사들은 피에르 레어가 지적한 4번, 즉 알코올 의존증이 인체자연발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18세기 술독에 빠져 살던 여성이 자연발화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역사서에 따르면 19세기에는 술에 찌들어 살던 사람이 불에 휩싸이는 일이 이따금 일어났다. 라팜스 쿼틀리가 다룬 당시 글에 의하면 유럽 각국 영주들의 금주령은 술이 인체자연발화의 잠재적 요인 중 하나라는 소문에 따른 것이었다. 잡지는 18세기 인체자연발화 보고서뿐 아니라 영주들이 펼친 금주운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뤘다.

■멀쩡한 사람 몸에 불이 붙은 사례들
2010년, BBC는 자택 거실에서 머리를 벽난로 쪽으로 향한 채 불에 타 숨진 76세 남성의 사연을 전했다. 시신과 그 아래 바닥, 그 위의 천장이 불탔을 뿐 거실의 다른 부분은 멀쩡해 경찰 수사가 난항에 빠졌다.

당시 현장을 체크한 감식반은 거실 벽난로가 발화의 원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소를 촉진하는 약품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에서 인체자연발화 이야기가 나왔으나 그 역시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해당 사건의 원인은 현재까지 불명이다. 

시신을 살펴본 52년 경력의 검시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검시관은 결국 남성이 인체자연발화 현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검시보고서를 제출했고, BBC와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언급했다.

당시 BBC는 유독 인체자연발화 현상이 영국에 빈발하다고 지적했다. 지리적 위치가 한 가지 원인으로 꼽혔으나 정확한 실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의 사례를 몇 개 더 들어보자. 1967년 9월 13일 런던 남부 램버스의 폐가에서 기묘하게 밝은 파란 불꽃이 치솟았다. 소방대는 계단 아래서 로버트 베일리라는 부랑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의 복부에는 10㎝가량의 자상이 있었고, 거기서 파란 불꽃이 솟아올랐다.

소화기를 사용해 간신히 불을 끈 뒤 살펴보니 베일리의 옷은 불길이 치솟았던 곳을 제외하고는 타지 않고 멀쩡했다. 검시관은 불길이 베일리의 몸 안에서 시작돼 밖으로 번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정확한 발화의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다.

1980년, 당시 73세였던 웨일스 출신 남성 헨리 토마스는 머리와 발끝만 남기고 불탄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두 부분 외에 숯더미가 돼버린 토마스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희생자의 자택을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토마스가 앉았던 의자와 바로 옆 테이블은 심하게 타버렸지만 희생자의 발에 신겨진 양말은 새것인양 멀쩡했다. 결국 경찰은 의자에 앉아 있던 토머스의 머리에 우연히 불이 옮겨 붙어 촛불이 타는 것처럼 천천히 타 죽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가 인체발화현상에 희생됐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진다.

인체자연발화를 다룬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중에서 <사진=Science Channel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Spontaneous Combustion Victim The Unexplained Files' 캡처>

2015년 11월 2일, 독일 플렌스부르크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40세가량의 여성이 갑자기 불길에 휩싸였다. 놀란 행인이 재킷을 벗어 불을 끄려 했으나 여성은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목격자들은 여성이 화염에 휩싸여 있을 때 고함도 지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부 전문가는 여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매우 빠른 속도로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봤으나 원인은 5년 넘게 불명이다.

1966년 12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전직 의사 존 어빙 벤틀리(92)의 집을 방문한 가스 검침원은 집이 불탄 흔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는 화재에 의한 것이 분명했으나, 욕실은 검게 타지 않고 암갈색으로 변색돼 있었다. 검침원은 거기서 슬리퍼를 신은 발끝만 남아 있는 존 어빙 벤틀리를 발견했다. 옆에는 타다 남은 보행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은 벤틀리가 허리 부상으로 걷기 힘들었던 점에 주목, 수사를 진행했으나 발끝 외의 시신은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수사관들은 벤틀리가 평소 파이프담배를 즐겼고, 다른 옷가지에서 그을린 자국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파이프를 화재원인으로 추정했다. 다만 보행기 끝부분의 고무나 주위 물건이 멀쩡했다는 점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50년 넘게 미스터리로 남은 존 어빙 벤틀리 사건은 인체자연발화의 대표 사례로 유명하다.

2011년 11월 7일 밤 10시, 스웨덴 예테보리 중앙역 구내 음반가게 앞에 남성이 서 있었다. 남성은 이내 불가사의한 불길에 휩싸였다. 공포에 질린 남자는 소리를 질렀지만 주위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바라만 봤다. 

다행히 행인들이 달라붙어 겨우 불을 껐다.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간 남성은 진정제를 맞고도 고통에 울부짖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난감해하던 예테보리 경찰은 9년이 지난 현재까지 화재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2013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보안관 론 록하트는 불탄 대니의 시신을 그의 자택에서 발견했다. 당시 대니의 집과 가구는 전혀 불타지 않았고, 시신을 분석한 결과 대니가 괴로워한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록하트는 대니의 픽업트럭 뒤쪽 창문이 부서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대니가 심한 알코올 중독에 골초였던 점이 유일한 단서였으나 수수께끼 같은 죽음은 현재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982년 9월, 노쇠한 캐나다 퇴역군인 잭은 에드먼턴의 자택에서 휴식 중이었다. 장애가 있는 딸 제니퍼(당시 61세)에게 말을 걸려고 고개를 돌리던 잭은 그만 놀라 자빠질 뻔했다. 제니퍼의 두 손과 얼굴 주변을 푸른 불길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자코 앉아 있었다.

잭은 황급히 불을 끄고 의사를 불렀지만 제니퍼는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8일 만에 숨졌다. 이 기묘한 죽음에 대해 수사관은 인체자연발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에드먼턴 경찰은 최종적으로 “인체자연발화는 현재로선 미지의 영역이며, 이번 건은 사인불명으로 보여진다”고 판단했다.

이상의 사례에서 보듯 인체자연발화의 희생자 일부는 고령자 또는 심한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시신과 접한 일부가 불탈 뿐 나머지 현장은 아주 멀쩡한 사실도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자신이 불타는 것조차 몰랐던 것으로 보이는 일부 기록은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로 위 사례들은 모두 서양권이나, 인도나 베트남 등 동양권의 인체자연발화 현상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여전히 활발한 인체발화 연구

인체자연발화의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는 지나친 음주 <사진=pixabay>

인체자연발화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최근 연구는 당뇨병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당뇨병에 걸리면 케토시스(ketosis) 상태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몸의 당 공급이 불충분하거나 각 조직의 당 소비가 불가능할 경우 혈중 케톤체 즉 아세톤이나 아세토초산 따위가 증가한다. 이렇게 케톤체가 오줌으로 배설되는 현상은 당뇨병 또는 기아나 당질기아, 에테르마취 상태에서 관찰된다.

일부 학자들은 체내의 케톤체가 비정상적으로 불어날 경우 인체자연발화 가능성이 다소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쉽게 말해 인화되기 쉬운 물질들이 정상적인 상태보다 혈액에 많이 포함됐다는 의미다. 술을 달고 살거나 당뇨병을 가진 사람의 경우 인체자연발화의 도화선이 일반인에 비해 그만큼 짧다는 이야기다.

영국 출신의 원로 생물학자 브라이언 J.포드(81)는 체내의 아세톤 증가가 인체자연발화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인화물질로도 잘 알려진 아세톤이 일부 병으로 증가, 지방조직에 축적되면 그만큼 SHC의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브라이언 J. 포드에 따르면, 이렇게 쌓인 아세톤은 담배나 정전기 등 외부요인에 의해 순식간에 발화할 수도 있다. 그는 "지금까지 사례를 종합하면 인체발화현상은 불씨가 존재하는 실내에 혼자 있던 사람에게서 나타났다"며 "그렇다면 원인은 체내의 어떤 물질, 일테면 에테르 따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언급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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