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공간에서는 원칙적으로 술이 금지된다. 하지만 보드카를 달고 사는 러시아 우주인들은 엄격한 규정에도 술을 몰래 가져갔고, 아름다운 지구를 안주 삼아 마셨다. 이 놀라운 사실은 전직 러시아 우주인들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의 경험을 고백하면서 최근 일반에 알려졌다.
이들은 '쥬스'라고 적힌 병에 코냑을 붓거나 우주복 주머니 또는 밴드형 혈압계에 보드카 술병을 숨겼다. 술의 종류나 밀반입 수법은 다양했지만 발사 전 중량검사를 위해 체중 또는 짐을 덜어내는 건 어떤 조종사나 마찬가지였다.
ISS에서는 2021년 현재도 알코올 섭취가 금기사항이다.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이 강력한 휘발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칫 우주정거장 내 정밀기기에 손상을 줄 수 있고, 뭣보다 화재 위험이 크다.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7년 보고서에서 "알코올 등 휘발성 물질의 사용은 다양한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술은 물론 가글, 손세정제, 향수도 금지품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러시아 우주인들에게 이런 규정은 참고사항에 불과했다. 우주개발 초기 장기간 임무수행 중 술생각이 날 것에 대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술을 가져갔다. 일부는 우주에서의 술 섭취가 건강에 좋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전 우주비행사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라즈트킨(63)은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들이 코냑을 권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표면적으로 러시아 연방우주국(로스코스모스)이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로선 머리를 짜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전직 러시아 우주인 이고르 볼크는 생전 "살류트7호(미르정거장의 전신)로 날아가기 1주일 전, 빵과 차 외에는 먹지 않고 2㎏을 뺐다"며 "그만큼 주머니에 술병을 넣고 우주복을 입었을 땐 미소가 떠올랐다"고 언급했다. 또 "두꺼운 책을 파내면 1.5ℓ짜리 술병이 딱 들어갔다. 술병이 달그락대지 않도록 솜을 채우는 게 중요했다"고 떠올렸다.
밀반입된 술을 숨기는 장소도 따로 있었다. 살류트7호에 머물렀던 러시아 비행사 게오르기 그레코(2017년 사망)는 생전 출간한 자서전에서 "무중력 공간에서 근육량 유지를 위한 특수 운동복 한 벌에 425g짜리 술병을 숨기곤 했다"고 털어놨다.
과연 로스코스모스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비영리단체 '화성탐사'의 대표 크리스 카베리는 저서에서 "로스코스모스가 술 밀반입을 실질적으로 눈감고 있었다"며 "우주에서 비행사들은 불안정한 정신상태가 된다. 잠들기 전 57g(숟가락 4분의 1) 정도 코냑을 마시는 건 건강에도 좋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비행사가 3800m 고도에서 보드카를 마셔도 임무수행 능력엔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재밌는 건 미국 우주비행사이 술을 얻어 마셨다는 사실이다. NASA 우주비행사 클레이튼 앤더슨(61)은 "NASA는 ISS에 알코올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5개월간 살아본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NASA는 미르정거장(2001년 폐기) 우주인들의 1997년 코냑파티 사진을 NBC가 공개하는 것을 막으려다 실패했다. 이 사진은 NASA 우주인들이 러시아 동료들이 숨겨온 술을 함께 마시는 장면을 담았다. 심지어 사진은 NASA 소속 우주인 제리 리넨저(65)가 찍었다.
사실 우주개발 초기엔 술이 엄격하게 규제되지 않았다. 미국 최초의 유인위성 발사계획 머큐리 프로젝트에 참가한 월터 쉬라(2007년 사망)는 생전 "다른 우주인들이 담배나 작은 커티샥 위스키를 가져갔다"고 언급했다.
미국 우주비행사 프랭크 보먼(92)은 1968년 12월 21일 아폴로 8호 발사 전 동료가 크리스마스용 식재료 안에 브랜디를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웃지도 못했다. 만약 브랜디 한 방울이라도 마시고 귀환하다 폭발한다면 순전히 술 탓이니까"라고 회고했다.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90) 역시 닐 암스트롱(2012년 사망)과 1969년 달 착륙 당시 착륙선 안에서 술을 즐겼다. 그는 "지구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달의 중력 속에서 와인을 마셨다"며 "잔에 부은 와인은 잔 테두리를 향해 천천히 우아하게 말려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우주공간에서 술을 마시면 지상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맥주의 경우, 중력이 없으면 거품이 뱃속에 쉽게 가라앉지 않고 딸꾹질이나 트림이 나와 속이 울렁거릴 수 있다. 2011년 ISS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는 우주환경 탓에 위스키 숙성이 방해를 받아 맛과 향이 지상과 완전히 달라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현재 NASA와 로스코스모스는 우주비행사가 임무 전 12시간은 술을 못 마시도록 규제한다. 다만 NASA의 건강관리사들은 탑승 준비를 마친 비행사가 전날 술을 진탕 마시는 것으로 보고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