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언덕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차갑고 거대한 병동.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체실험과 수십년 간의 폐쇄 조치. 그리고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진입했다 마주치는 유령과 초자연현상, 밝혀지는 진실.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표현들은 문학적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언덕 위 유령의 집은 실제로, 그리고 아직도 존재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귀신들린 건물'은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제퍼슨 카운티 남서부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웨이벌리 힐즈 요양소(Waverly Hills Sanatorium)다.

여기에서 목격된 초자연현상은 심령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집대성한 정도로 광범위한 수준이다. 환자와 간호사, 의사의 유령을 비롯해 창가에 비치는 어스름한 그림자가 목격됐다. 스스로 움직이는 물체는 기본이고 허공에 떠다니는 의문의 구체와 차가운 기운이 여러 차례 TV에 소개됐다. 이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메스꺼움과 현기증을 경험했다. 

웨이벌리 힐즈 요양소 <사진=Dan Oshier Productions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 THE WORLD'S MOST HAUNTED PLACE!' 캡처>

이 시설에서 유령이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는 과거 시신을 외부로 옮길 때 사용하던 터널이다. 일명 '바디 슈트(시체 도랑, Body Shute)'라는 곳으로, 여기선 거의 모든 종류의 유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경험자들 말이다. 비슷한 이유로 '502호'도 귀신이 출몰하는 악명높은 구역으로 손꼽힌다.

특정 장소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유령에게는 이름도 붙었다. 어린이 시설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소년의 유령은 티미, 피에 젖은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노인 여성 유령은 크리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건물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시설이 품은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아수라장이 조금은 이해된다.

소름끼치는 시설 내부 <사진=Dan Oshier Productions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 THE WORLD'S MOST HAUNTED PLACE!' 캡처>

1910년 문을 연 이 요양소는 당시 지역을 괴롭히던 결핵의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설계됐다. 당시 결핵은 사형선고로 여겨지던 무서운 불치병. 전파 방법이나 치료법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는 일반적으로 요양소에 격리됐다.

루이빌은 물론 인근 지역 환자들까지 수용하기 위해 웨이벌리 힐즈는 상당한 규모로 건축됐다. 외부와 완전 격리를 위해 시설에는 병원과 자체적인 밭, 농장, 심지어 우체국과 라디오방송국까지 들어섰다. 환자는 물론 의료진과 관련 종사자들까지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나올 수 없던 폐쇄적인 곳이다.

의료진은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폐 절제술 등 극단적인 치료법을 시도했다. 때문에 이곳에서 죽음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원혼이 서릴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게 됐다. 이런 분위기에 숱한 목격담까지 더해지며 '웨이벌리 힐즈의 공포'가 확산됐다.

1944년 결핵 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이 개발되자 웨이벌리 힐즈는 폐쇄됐다. 이후 수십년 간 방치된 이 건물은 노인시설, 호텔, 컨퍼런스센터 등으로 개조됐으나 번번히 무시무시한 소문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현재는 초자연현상 애호가에 의해 매입돼 과거 형태를 복원하고 매년 유령의 집 행사를 여는 중이다.

호러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 <사진=넷플릭스>

이런 역사를 통해 웨이벌리 힐즈는 미국은 물론 다수의 국제적인 TV 프로그램에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들린 집'으로 소개됐다. 내로라하는 심령술사와 전문 조사팀들은 입을 모아 "이곳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유령이 많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웨이벌리 힐즈는 미국에서 가장 강렬한 유령의 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중 문화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걸작 호러 시리즈 '킹덤(Kingdom)'은 웨이벌리 힐즈 이야기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존 쿠삭 주연의 공포영화 '1408'은 '502호'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넷플릭스의 히트작 '힐 하우스의 유령'과 영화 '힐즈 아이즈(The Hills Have Eyes)', 게임 '사일런트 힐' 등 호러물에 유독 '힐즈'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것도 바로 웨이벌리 힐즈 때문이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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