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신체 일부에 대한 피해가 유발하는 육체적 아픔이다. 불쾌감이나 우울함 등 정신적 괴로움 역시 고통의 일종이다. 인간을 비롯한 척추동물은 육체적·감정적 고통을 모두 경험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훨씬 단순한 신경계를 가진 무척추 동물도 마찬가지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개와 비슷한 5억개 이상의 신경세포를 가진 문어는 무척추 동물 중 가장 복잡한 존재임에도 고통에 초점을 맞춘 실험이 거의 없었다. 수년간 이 문제를 연구해온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신경생물학자 로빈 크룩 교수는 최근 문어와 고통에 대한 놀라운 연구결과를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문어가 통증에 직면했을 때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세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문어의 신경계가 척추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름에도 포유류가 보여주는 것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 연구에서도 문어는 유해한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 이를 피하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몇 단계 더 나아갔다.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문어 <사진=pixabay>

연구팀은 문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A, B, C 세 개의 방을 마련했다. A방에서는 따끔한 아세트산 주사를 놓았고 B방에서는 무해한 식염수 주사를 놓았다. 산을 주사받은 문어들은 이후 같은 방을 피했으나, 식염수를 주사받은 문어들은 회피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C방에서는 아세트산 주사를 맞은 문어를 대상으로 마취제인 리도카인을 투여했다. 이후 문어들은 C방을 선호했다. 식염수를 주사받은 문어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에 대해 크룩 교수는 "고통을 주는 장소와 고통을 덜어주는 장소에 대한 이같은 반응은 정서적 통증 경험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문어가 신체 각 부위에서 느끼는 통증의 특성과 강도도 구별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산을 주사한 모든 문어는 20분에 걸쳐 주사 부위를 이빨로 긁어 피부 조직을 제거해냈다.

이는 문어가 다리가 잘릴 경우 느끼는 말초신경반응과는 다르며, 산 주입이 중앙의 뇌와 연결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포유류에서 말초신경의 지속적인 통증은 뇌 또는 척수의 장기적인 변화를 유발한다. 반면 두족류는 말초신경계에 크게 의존한다고 알려졌을 뿐, 고통이 중추로 얼마나 전달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전기생리학적장치를 사용해 문어의 뇌로 가는 경로에서 장기간의 말초반응 변화도 확인했다. 이는 산성주사로 인한 통증의 강도를 나타낸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게다가 이런 신호는 마취제를 통해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에 통증 경험의 확실한 신호로 볼 수 있다.

크룩 교수는 "이런 데이터는 문어가 지속적이고 부정적인 정서를 느낀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와 매우 다른 동물의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 상태를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 실험에서 문어가 보여준 행동은 고통의 신체적·감정적 요소를 드러낸 것"이라며 "문어가 보여준 반응은 기존 실험에서 설치류가 보여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시적인 통증과 달리 지속적인 통증은 이제까지 포유류의 특징으로만 알려졌기에 이번 연구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인간이 두족류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윤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동물계의 고통 경험에 대한 새로운 진화적 단서를 제공한다.

크룩 교수는 "연구의 목표는 무척추 동물의 고통 문제를 인식, 이제까지 부족했던 두족류에 대한 인간의 배려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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