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떤 부모도 아이 키우기 쉽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힘든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 밝혀졌다.
해당 연구는 지난 2018~2020년 전 세계 42개국 1만700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했다. 연구의 핵심은 육아 스트레스에 따른 번아웃(Burn-out) 현상의 파악. 이는 보호자로서 역할에 찌들어 자녀와 거리감을 느끼거나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심하면 자녀를 방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연구팀은 육아 번아웃의 원인 중 중요한 포인트를 '문화적 차이'에 맞췄다. 사회인구학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참가자들에게 정서적 피로감, 자녀와의 거리감, 부모로서 즐거움 상실, 이전에 부모로서의 자아와 대조 등 가족간의 관계 및 자아통찰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연구팀은 육아 번아웃에 대한 비율이 국가마다 크게 다르지만 국가별 문화 가치 및 특성에 따른 일련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연구를 주도한 벨기에 루뱅카톨릭대학교 발달심리학자 이사벨 로스캄 교수는 "특히 개인주의 문화권의 국가에서 육아 번아웃이 두드러졌다"며 "실제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적 불평등이나 자녀의 숫자 및 연령,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 등의 요소와 더불어 육아 번아웃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유럽과 미국에서 육아 번아웃이 높게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육아 번아웃이 심한 국가는 벨기에(8.1%)였고, 미국이 7.9%로 2위, 폴란드가 7.7%로 3위였다.
반면 개인주의가 약한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에서는 육아 번아웃이 낮은 편이었다. 태국은 설문조사를 실시한 42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번 연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중국과 일본은 하위 5위권에 속했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개인주의가 유일하지만, 향후 사회적 분위기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유럽과 미국 등의 육아 규범이 지난 50년간 점점 까다로워지면서 부모의 노력을 강요하고 심리적 압박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회학자의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서구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자녀를 먹이고 훈육하고 잠재우고 놀아주는 등 양육의 거의 모든 부분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이슈화됐다. 그러다보니 자녀에게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도움이 되는 것'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고, 무조건 아이에게 최고가 아닌 것은 아동 학대처럼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연구팀은 육아 번아웃을 줄이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로스캄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 내에서 부모들 간의 지식공유와 상호 지원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뭣보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육아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주변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최근 국제 학술지(Affective Science)에 게재됐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