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유기하는 끔찍한 사건이 계속되는 가운데, 법의학적으로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실험이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호주 머독대학교는 8일 공식 채널을 통해 지역 관목림 일부에 동물 사체가 든 여행용 가방과 쓰레기통을 방치하는 법의학 실험을 1개월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이 마련한 가방과 쓰레기통에는 사산한 돼지 새끼 사체가 들었다. 실험 관계자는 “안타깝게도 인간의 시신이 든 여행 가방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여행 가방은 밀봉되므로 시신 부패가 자연 상태와 사뭇 달라진다. 이런 특수한 과정을 정확히 예측하면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서 여행 가방이나 쓰레기통, 차량 트렁크, 냉동고 등에서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곤 한다. 2020년 인천 무의도 선착장 인근에 시신이 든 여행 가방이 발견된 사건의 기억이 생생하다. 2015년 일본에서는 행인으로 붐비는 도쿄역 코인 로커에서 여행용 가방에 담긴 여성 시신이 발견돼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경찰과 프로파일러, 법의학자들은 범인이 여행용 가방에 시신이 버리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실험 관계자는 “계획범일지라도 살인범의 상당수는 범행 직전에야 시신 처리를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며 “쉽게 구할 수 있고 크기도 충분한 데다 휴대가 편하고 당분간 냄새를 막아주므로 여행 가방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여행 가방 내부에 곤충이 쉽게 침입하지 못한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범죄 수사에서 시신에 들러붙은 곤충은 중요한 정보원이다. 법의학자들은 이를 통해 사망 시간을 추정하고 범인이나 피해자의 동선을 특정할 수 있다. 피해자의 약물 및 DNA 역시 곤충을 통해서도 검출 가능하다.
실험 관계자는 “외부에서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곤충이 곧바로 달려든다. 몇 시간 안에 개구부와 상처에 알이 생기고 애벌레가 시신에 파고든다”며 “여행 가방 안에는 곤충이 잘 들어가지 못해 야외에 유기된 시신과 부패 패턴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총 70개에 달하는 여행 가방과 쓰레기통을 동원한 이번 실험에서는 온도와 습도, 강수량 등 주변 상황도 모두 기록된다. 현재 호주는 날씨가 쌀쌀해 실험 직후 곤충이 보이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여행용 가방 지퍼 근처에 파리와 딱정벌레 알이 발견됐다.
실험의 최종 결과는 오는 2023년 2월 개최되는 국제법의학 학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