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생존력으로 유명한 곰벌레가 사람 생명을 구할지도 모르겠다. 곰벌레의 단백질을 이용해 의약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연구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완보동물의 하나인 곰벌레는 몸길이 0.3~1㎜로 아주 작지만 끓는 물에 삶거나 총알의 2배 속도로 바닥에 내동댕이쳐도 살아남는 비현실적 생명력으로 유명하다.

미국 와이오밍대학교 연구팀은 26일 공식 채널을 통해 신체 손상을 복구하는 곰벌레의 특수 단백질을 이용해 생물제제를 냉장하지 않고 오래 보관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연구팀은 DNA 손상을 복구하는 곰벌레 단백질을 이용하면 냉장 보관이 필수인 의약품을 상온에서 보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게 가능하다면 환경이 열악한 국가나 지역에 중요한 의약품을 쉽게 공급할 수 있어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엄청난 생존력을 지닌 곰벌레는 미 항공우주국(NASA)도 주목하는 생물이다. <사진=NASA 공식 홈페이지>

'물곰(Water Bear)'이라고도 하는 곰벌레는 150℃ 이상의 고온, 절대영도에 가까운 초저온, 진공, 고압, 심지어 치사량을 넘은 방사선도 견딘다. 극한의 환경에 놓인 곰벌레는 탈수가사 상태에 들어가 대사를 늦추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지난해 연구에서는 냉동 상태에서 곰벌레의 노화 속도가 확 떨어지는 것도 확인됐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습기가 아예 없는 건조한 상태에서 오래 버티는 곰벌레의 생명력이다. 심하게 건조한 곳에서 곰벌레는 특유의 가사상태에 돌입해 몸을 지킨다. 이때 곰벌레의 몸은 바싹 건조해지는 대신 특수한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가 손상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특수 단백질로 냉장 보관이 필요한 의약품을 상온에 보존할 수 있는지 들여다봤다. 실험 관계자는 "중요한 백신이나 혈액, 항체, 줄기세포 같은 생물제제는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으면 금방 못쓰게 된다"며 "혈액응고인자 제제같이 혈우병 환자에 아주 중요한 약은 냉장 시설이 없는 낙후한 지역에는 운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극한의 상황에 버티기 위해 몸을 돌돌 만 곰벌레. 이를 턴(tun)이라고 한다. <사진=BuzzFeed Multiplayer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What Is A Water Bear?' 캡처>

이런 점에서 연구팀은 혈액응고인자 제제 중 하나인 제VIII 인자를 건조한 뒤 곰벌레 단백질과 섞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혈액응고인자 제제는 냉장고에 넣지 않고도 저장이 가능했다. 무려 10주가 지난 뒤에도 멀쩡했으며, 수분을 이용해 원래대로 돌려보낸 결과 약효는 그대로였다.

실험 관계자는 "이 정도라면 생물제제를 더 이상 냉장 보관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중요한 의약품을 전달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등 낙후된 지역, 심지어 우주에서도 활용 가능한 뜻깊은 발견"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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