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세포에 오징어 유전자를 이식, 투명화하는 실험이 성공했다. 오징어는 특수 세포를 이용해 주변 상황에 맞춰 피부의 투명도를 자유롭게 바꾸는 위장의 명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 생물학 연구팀은 31일 발표한 논문에서 오징어 세포 속 단백질을 형성하도록 명령하는 유전자를 사람에 이식하면 놀라운 위장 능력이 발휘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특수 세포를 활용해 피부 투명도를 바꾸는 오징어의 능력을 인간도 가질 수 없을까 고민했다. 오징어 위장의 비밀은 백색소포(leucophore)라는 특별한 세포인데, 현재 기술로는 배양할 수 없고 위장 메커니즘을 자세히 규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징어의 백색소포는 리플렉틴이라는 반사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리플렉틴은 입자 모양의 나노구조를 형성해 빛을 산란한다. 이 리플렉틴의 나노구조가 작을 때는 백색소포에 닿은 빛이 그대로 통과해 오징어 몸통이 투명하게 보인다. 반대의 경우 빛이 반사되면서 오징어가 새하얗게 변한다.
연구팀은 오징어의 리플렉틴 나노구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면 인간도 피부가 투명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시험해 보기 위해 연구팀은 리플렉틴 생성 명령을 내리는 오징어 유전자를 인간 세포에 이식했다.
그 결과 인간의 세포는 안정적으로 리플렉틴을 생산하고 빛을 산란시키는 나노구조를 만들어냈다. 오징어 단백질을 포유류 세포에 이식, 세포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실험으로 처음 입증됐다.
실험 관계자는 "오징어 유전자가 내장된 인간 세포의 투명도를 조절하려면 배양액에 소금을 넣으면 된다"며 "그러면 리플렉틴이 팽창하고 배열 방식이 바뀌면서 나노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염도를 점점 진하게 함으로써 나노구조의 기능이 변화하는 것도 확인했다. 나노입자가 크게 성장함에 따라 산란하는 빛이 늘어 세포가 점점 불투명해지는 현상이 분명하게 파악됐다.
실험 관계자는 "투명 인간이 만들어질 법한 이 과정은 이전에도 재현된 적은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세포의 빛의 산란과 투명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리모델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성과는 오징어의 위장 능력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리플렉틴의 광학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세포 촬영 방법을 개발하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