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유적의 물웅덩이에서 발견된 카누는 명계, 즉 저승으로 떠나는 망자의 탈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INAH)는 10일 공식 채널을 통해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희귀한 마야 카누의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카누는 지난 2021년 발굴됐다. 당시 INAH 고고학 연구팀은 멕시코 유카탄반도 세노테를 조사하다 나무로 만든 카누를 확인하고 건져 올렸다. 세노테란 수직동굴 또는 싱크홀의 영향으로 암반이 노출된 상태에서 오랜 세월 지하수 또는 비에 침식돼 생긴 물웅덩이다.
연구팀이 조사한 세노테는 고대 마야의 주요 도시 치첸 이트사에서 약 72㎞ 거리로 규모가 꽤 컸다. 수심 4.6m의 세노테 바닥 모래에 묻힌 카누의 길이는 2.5m, 폭은 45㎝, 높이는 약 36.5㎝였다.
카누에는 사람과 동물 뼈, 곱게 장식된 그릇 등이 흩어져 있어 한눈에도 누군가 이용한 것처럼 보였다. 다만 연구팀은 고대인이 카누를 타다 조난당했다기보다는, 시신을 동물, 부장품과 함께 카누에 태우고 수장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카누의 나무와 뼈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나섰다. 그 결과 카누는 스페인의 마야 정복이 본격화된 뒤인 16세기 세노테에 가라앉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관계자는 "카누는 특이한 디자인과 구조로 미뤄 탈것이 아니라 중요한 의식을 위해 제작된 것처럼 보였다"며 "사람 외에 아르마딜로 뼈도 발견됐는데, 이 동물은 일부 고대 문명에서 신, 영혼과 관계성이 이미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어 "이 밖에도 카누에는 여성의 다리뼈, 독수리와 개, 칠면조 뼈 등 유골 38점이 수습됐다"며 "동물들은 망자의 길동무로 배에 실렸을 가능성이 있다. 여성의 전신 골격이 아닌 다리뼈만 남은 점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마야 유적에서 나온 도자기 일부에는 아르마딜로를 걸터앉은 신들의 그림이 들어갔다. 마야인들은 아르마딜로의 갑옷 같은 피부를 신성하게 여긴 것으로 전해진다.
연구팀은 여성의 다리뼈 하나만 남은 점에서 매장이 아닌 섬뜩한 의식의 증거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카누가 명계로 가는 탈것일 가능성은 크게 봤다. 카누가 세노테에 묻힌 것은 저승이나 우주에 대한 마야인들의 신앙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조사 관계자는 "마야 신앙에서 동굴과 세노테 등 함몰된 지형은 우주로 연결되는 입구로 여겨졌다"며 "즉 마야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동굴이나 세노테 등 물이 고인 지형을 찾았고, 여기를 통해 죽은 이가 저승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