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어있거나 바닥에 앉은 파리를 책이나 물건으로 내리치다 놓친 경험은 아주 흔하다. 파리는 어떻게 인간의 공격을 매번 잘 피하는 걸까.

이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끈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대학교 연구팀은 14일 '로열 소사이어티 B: 생물학(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들이 파리를 번번이 놓치는 과학적 근거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일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집파리(Calyptratae)를 실험에 동원했다. 집파리는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는 물론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권에도 널리 분포하는 종이다.

파리의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관들. 평형곤도 그 중 하나다. <사진=TED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Michael Dickinson: How a fly flies' 캡처>

실험에서 관찰된 파리의 첫번째 생존비결은 '평형곤(halteres)'이다. 평형곤은 파리를 비롯해 모기나 잠자리의 뒷다리 바닥 부분에 붙은 아령 모양의 기관이다. 이 부분의 진동을 통해 파리는 비행 중 회전을 감지하고 각종 정보를 날개와 다리에 전송해 몸을 안정시킨다. 

연구팀은 고속 카메라를 설치해 초당 최대 3000프레임 속도로 집파리와 다른 종류의 파리를 비교 촬영했다. 그 결과 집파리는 평균 0.007초의 짧은 순간에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날아올랐다. 다른 파리들은 평균 0.039초, 네 번의 날갯짓이 필요했다. 집파리가 다른 파리보다 무려 5배나 빨랐다.

이어 모든 파리를 마취시킨 상태에서 평형곤을 제거하고 이에 따른 영향을 관찰했다. 집파리가 날아오르는 데 시간이 훨씬 더 걸렸고 비행 중 안정성도 떨어졌다. 심지어 착륙시 바닥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다른 파리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집파리 <사진=pixabay>

케이스웨스턴대학교 생물학과 알렉산드라 야거 박사는 "결국 집파리는 평형곤 때문에 다른 파리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인 탈출을 할 수 있다"며 "공격자나 포식자로부터 빠르게 도망쳐 살아남았기 때문에 1만8000종에 달하는 파리들 가운데에서도 12%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다수"라고 말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세포신경과학과 로저 하디 교수는 지난 2017년 BBC를 통해 "인간은 초당 60개의 이미지를 뇌로 전송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만, 파리는 초당 400개의 이미지를 처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쉽게 말해 파리에게는 인간의 동작이 6배나 느리게 움직이는 슬로 모션으로 보인다. 게다가 파리는 날아다니는 중 0.01초만에 경로를 바꿀 정도로 강력한 날개 힘을 갖췄다. 아무리 사람이 파리채를 들고 달려들어도 쉽게 피할 수 있는 이유다. 

연구팀은 날쌘 집파리를 잡기 위해서는 파리가 앉은 곳 말고 조금 앞쪽을 조준해서 한방 날릴 것을 권했다. 다만 아직 인간이 파헤치지 못한 파리의 능력이 많아 실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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