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년 전 미케네 장인들이 제작한 그리스 전사의 갑옷은 치열한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할 만큼 견고하고 기동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리스 테살리아대학교 연구팀은 덴드라 갑주(Dendra panoply 또는 Dendra armour)로 알려진 3500년 전 갑옷이 전사의 몸을 충분히 지켰고 무기를 휘두를 정도의 가동성을 갖췄다는 실험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덴드라 갑주는 1960년 무덤 도굴꾼이 잡히면서 햇빛을 보게 됐다. 고분에서 전사의 무구가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덴드라 갑주는 팔다리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을 금속판으로 가린 탓에 무게가 20㎏이 넘어 실용성이 의심됐다.
일부 학자들은 덴드라 갑주가 실제 전투가 아닌 의식용 또는 장식용이라고 추측했다. 연구팀은 이 갑옷의 진짜 용도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스 해병대원까지 동원한 실험을 기획했다.
실험 관계자는 "갑옷은 앞뒤 판을 합친 청동제 가슴 받침과 목 받침, 2중 견갑, 허리 아래를 보호하는 보호대 3개로 구성된다"며 "덴드라 갑주는 연대를 감안할 때 매우 정교하며, 유럽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갑옷이 1600~1700년대에 겨우 출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덴드라 갑주는 기원전 1600년 경 그리스에서 번성한 미케네 문명의 찬란한 유물 중 하나"라며 "이 시절 그리스는 소아시아 트로이아에 원정군을 보내 치열한 트로이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무구가 발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전 테스트를 위해 연구팀은 덴드로 갑주의 정교한 복제품을 제작했다. 전사가 사용했을 칼과 방패, 창까지 완성한 연구팀은 그리스 현역 해병대원의 협조를 얻어 실험에 나섰다.
해병대원 13명은 11시간에 걸쳐 고대 그리스식 전투를 벌였다. 모의 전투는 트로이 전쟁을 묘사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에서 발췌한 기록을 바탕으로 최대한 진짜에 가깝게 재현했다.
3500년 전 기후와 지형까지 고증한 실험에서 해병대원들은 덴드라 갑주를 입은 채 창과 칼을 확실하게 휘둘렀다. 도보는 물론, 전차를 탄 상태에서 그리스 군의 일반적 전술이던 일명 히트앤드런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이 덴드라 갑주의 높은 실용성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능이 우수한 덴드라 갑주와 무기들을 통해 강력한 미케네 문명이 구축됐다는 게 연구팀 결론이다.
실험 관계자는 "일부 학자들은 미케네 문명이 먼 옛날 동지중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결정적인 이유가 덴드라 갑주 등 우수한 무구라고 봤다"며 "우리 실험은 이들의 가설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