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북숭이 루시는 이제 잊어야 한다."
318만 년 전 화석 인류 루시는 학자들의 생각만큼 체모가 풍성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루시가 이미 벌거벗은 데 대한 수치심을 갖고 있었다는 새로운 견해에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미국 케네소주립대학교 인류학자 겸 철학자 스테이시 켈트너 교수는 최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루시는 학자들의 추측과 달리 몸 전체의 풍성한 체모를 갖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루시는 화석 인류의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중 가장 유명한 표본이다. 미국 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81) 등이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했다. 키 약 1m에 이족보행 흔적이 확인됐고 복원본은 털북숭이로 묘사됐다.

스테이시 교수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진보하면서 우리가 생각한 화석 인류의 정보나 이미지도 바뀌어 간다"며 "인류의 조상, 거룩한 어머니로 불리는 루시는 발굴 50년을 맞은 현재 진화와 관련된 수수께끼가 여럿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루시 하면 얼굴부터 몸통을 뒤덮은 적갈색 체모를 떠올리지만, 당시 여성들은 최소한 벌거벗은 데 대한 수치심은 있었을지 모른다"며 "공진화 연구에서 우리 조상은 300만~400만 년 전 체모 대부분을 잃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류가 옷을 지어 입은 시기는 8만3000년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체모를 잃게 되면서 개발된 의복은 처음에는 체온 조절 역할만 가능했다. 이후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고 이성에 대해 매력을 어필하는 등 사회·문화적 기능도 갖게 됐다.

스테이시 교수는 사람이 체모를 버리고 옷을 택한 것은 육아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많은 동료와 함께 살아왔다. 이런 환경에서는 이성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며 벌거벗은 채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며 "2인 1조 협력 체제인 부부관계가 붕괴돼 아이 키우기가 어려워지지 않도록 사람은 수치심을 진화시켰고 옷을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원래 수치심은 배우자에 충실하도록 부추기고 육아의 책임감을 공유하는 기능도 있다"며 "인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질서와 법률 같은 사회 유지를 위한 수단도 발달했다. 벌거벗는 것을 규범 상 해악으로 생각한 인류가 자연히 옷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