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반딧불이 암컷이 짝짓기 때 사용하는 생물발광(bioluminescence) 패턴을 역이용, 수컷 반딧불이를 사냥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 화중농업대학교 연구팀은 18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소개된 조사 보고서에서 거미가 수컷 반딧불이의 생물발광 신호를 독으로 조작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구팀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산왕거미(학명 Araneus ventricosus)를 관찰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 반딧불이 암컷이 짝짓기 시즌에 사용하는 생물발광 신호를 산왕거미가 교묘하게 이용해 먹잇감을 유인한다는 이야기다.

조사를 주도한 화중농업대 곤충생태 전문가 푸 신화 연구원은 "한번은 야외에서 산왕거미를 관찰하다 거미줄에 걸린 반딧불이가 죄다 수컷인 점을 알아냈다"며 "더 이상한 것은 그물에 걸린 반딧불이 수컷들의 빛 점멸 패턴이 암컷의 것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물에 걸린 수컷 반딧불이에 독을 주입하는 산왕거미 <사진=푸 신화>

푸 신화 연구원은 최근 우한 교외에서 실시한 관찰조사에서 이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그는 "논과 연못이 많은 농촌을 방문, 산왕거미의 생태를 본격적으로 관찰했다"며 "이 거미는 매일 밤 새 그물을 치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반딧불이가 활동하는 시간대와 절묘하게 겹쳤다"고 말했다.

곤충 채집망을 이용해 수컷 반딧불이를 잡은 연구원은 핀셋으로 집어 거미줄에 올려놓았다. 이후 캠코더를 설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폈다. 그 결과 산왕거미는 수컷 반딧불이를 감싸고 가슴팍을 물어 독을 주입했다. 그 후 그물 한가운데에 반딧불이를 남기고 자신은 구석에 숨었다.

잠시 후 반딧불이의 발광기관은 암컷처럼 작아졌고, 짝짓기 할 수컷을 찾을 때 사용하는 패턴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면 거미는 그물 가운데로 다시 흉부를 물고 독을 넣었다. 이런 독특한 사냥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렸다. 거미는 새로운 수컷 반딧불이가 그물에 걸리자 독을 주입했던 희생양을 먹어치웠다.

거미는 오랜 세월 다양한 사냥법을 개발해 왔다. <사진=pixabay>

푸 신화 연구원은 "붙잡힌 수컷 반딧불이의 빛을 암컷 패턴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은 산왕거미가 사용한 독일 것"이라며 "보다 몸집이 큰 수컷을 꾀기 위한 독특한 사냥법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어 "대개 줄을 치는 거미들은 시력이 약하다고 알려졌는데, 산왕거미는 반딧불이의 발광을 구분할 정도의 시력은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학계는 연구원의 추측대로 산왕거미가 독을 이용해 반딧불이의 생물발광 패턴을 마음대로 조작했는지 불분명하다며, 향후 신경생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거미의 독특한 사냥법 하나를 더 발견한 점에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사냥감을 잡기 위해 거미가 진화시킨 기술은 실로 다양하다. 학자들에 따르면, 침을 이용해 사냥감을 함정에 빠뜨리는 종도 있고 뱀마저 잡을 수 있는 강력한 그물을 치는 거미도 존재한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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