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를 좀비로 만드는 신종 균류가 북아일랜드에서 발견됐다.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미지의 균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 화약고에서 우연히 정체가 드러났다.

영국 자연환경 조사 단체 카비(CABI)의 해리 에반스 박사 연구팀이 국제 균류 학술지 'Fungal Systematics and Evolution' 최신호에 소개한 희한한 균류는 영국 BBC 자연 다큐멘터리 '윈터워치(Winterwatch)' 팀이 2021년 촬영 도중 확인했다.

'윈터워치' 제작팀은 북아일랜드 습지보호구역 내 빅토리아 시대 화약고를 촬영하던 중 이상한 거미 사체에 눈이 갔다. 가늘고 긴 다리가 특징인 장수갈거미(Tetragnatha praedonia)의 일종 메텔리나 메리아나에(Metellina merianae) 거미는 표면에 균류로 보이는 물체가 부착된 채 죽어있었다.

장수갈거미 일종 메텔리나 메리아나에를 좀비화한 신종 균류. 기벨룰라 애튼버러이로 명명됐다. <사진=CABI 공식 홈페이지>

의문의 거미가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에 서식하는 장수갈거미의 일종 메타 메나르디(Meta menardi)에 비슷한 균류가 붙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윈터워치' 제작팀 의뢰로 조사에 나선 연구팀은 메타 메나르디가 동굴의 어두운 곳에 은신하는 데 비해 감염된 개체는 천장이나 벽 등 노출된 장소까지 기어 나온 점에 주목했다.

해리 에반스 박사는 "균류는 거미를 조종해 안쪽에서 밖으로 유도했고, 포자를 날려 번식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DNA 검사에서 해당 균류는 신종임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미스터리한 균류는 기벨룰라 애튼버러이(Gibellula attenboroughii)로 명명됐다. 수많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방송인 데이비드 애튼버러(98)의 이름을 붙였다.

빅토리아 시대 화약고에서 2021년 발견된 기벨룰라 애튼버러이 <사진=CABI 공식 홈페이지>

해리 에반스 박사는 "애튼버러이의 포자는 거미의 몸에 침입해 혈체강(무척추동물의 혈액이 흐르는 공간)에 감염된다"며 "일단은 거미를 살린 채 좀비화시켜 노출된 장소까지 유도하고 독을 방출해 죽여버린다"고 전했다.

이어 "그대로는 시체가 썩어 버리기 때문에 항생물질로 세균의 번식을 막고 미라로 보존한다"며 "천천히 시간을 들여 거미의 영양분을 섭취한 뒤 긴 구조물을 성장시키고 거기서 다시 포자를 확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기벨룰라 애튼버러이가 만들어내는 화합물을 의약품으로 이용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해리 에반스 박사는 "이 균류는 북아일랜드에서만 확인됐지만 비슷한 것은 영국 웨일스의 거미에서도 발견됐다"며 "이는 영국에 존재하는 기생균의 다양성을 의미하며, 해당 균류를 더 조사하면 이로운 약 개발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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