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무섭다"란 표현을 가끔 접한다. 한여름 대목을 노린 공포영화 카피로 종종 사용되는 표현이다. 보는 이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해 서늘함을 주는 것이 호러무비의 목적이자 존재이유인데, 도가 지나쳐 실제로 사람이 실신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점 하나. 과연 공포감만으로 사람이 죽음에 이를 수 있느냐다. 과학자들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 왔는데, 현재로서는 "그렇다"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포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

호러무비가 주는 극도의 공포감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주목 받는다. <사진=영화 '컨저링2' 스틸>

과학자들은 일련의 이유로 사람의 공포심이 발동되면 인체 구석구석에 빨간불이 들어온다고 설명한다. 우선 뇌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뇌 기관인 편도체(amygdala)는 공포에 따른 자극을 직감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다. 혈액에 다량의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유입되면 심박수가 상승하고 폐가 부풀면서 많은 산소를 요구한다. 때문에 호흡이 갑자기 가빠지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패닉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생사가 걸린 긴급사태'로 감지한 우리 몸의 소화기들은 잔뜩 움츠러든다. 일부 소화기는 과도하게 수축한 탓에 내용물을 토해내기도 한다. 각 근육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에너지가 대량 공급된다. 이런 연속적인 화학반응은 인간이 죽음에 이를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비책이자 안전장치다. 하지만,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벌어지는 작용인 탓에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가장 안 좋은 점은 심장이 손상될 우려다.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은 칼슘을 대량 방출시키는데, 이 칼슘이 흉강 내로 흘러들어가면 심장 근육이 경직될 수 있다. 이는 우리 몸이 스트레스 등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다. 다만 유입된 칼슘이 너무 많거나 민감한 체질이라면 심장의 정상적 움직임이 방해 받기도 한다. 

원래 심장은 정기적 전기신호에 따라 움직인다. 이 신호가 어떤 이유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심실세동, 즉 심장 내 심실 각 부분이 불규칙하게 수축해버린다. 심실세동은 심장에 유입되는 혈액이 부족하면 나타나며, 심각할 경우 적절한 제세동(심실세동 또는 심방세동을 정상조율로 되돌리는 수단) 조치가 없으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공포와 죽음의 연관성은
우리 신체의 구조가 이렇다 보니, 공포영화를 보다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심장 트러블을 일으키는 경우는 실존한다. 다만 이렇게 사망한 경우, 사인을 '공포'라고 적을 검시관이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공포와 사망의 연결고리가 확실하더라도 '극도의 공포가 유발한 스트레스성 심장발작' 정도로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50년대 공포영화 '크리핑 언노운'과 '블랙 슬립' <사진=영화 '크리핑 언노운' '블랙 슬립' 공식 포스터>

실제 사례를 들여다보자. 기록에 따르면 1956년 10월, 미국 유타주에서는 공포영화 '크리핑 언노운'(The Creeping Unknown, 1956)과 '블랙 슬립'(The Black Sleep, 1956) 동시상영관에서 소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9세였던 스튜어트 코핸은 먼저 상영한 '크리핑 언노운' 앞부분을 보던 중 고꾸라졌다.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이 확인됐다. 

유족 동의로 이뤄진 부검 결과, 코핸은 정상보다 작은 심장을 갖고 있었다. 이는 부모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 부검을 진행한 알버트 바우어 박사는 코핸이 영화를 보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소년을 죽음으로 몰아간 공포영화 상영을 둘러싼 논란이 한동안 계속됐다. 

두 번째 비극은 인도에서 벌어졌다. 2010년 12월, 한 극장이 영화 '에이리언'(1987)과 '아트마카타(Atmakatha, 1988) 등 영화 네 편을 연속상영했는데, 프랍하카르라는 남성이 이를 본 뒤 쇼크로 쓰러졌다. 상영이 끝나고 화장실에 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프랍하카르는 하필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큰 충격을 받았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진 그에 대해 의사는 "쓰러진 이유가 영화에 따른 극도의 공포감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가장 최근 사례는 1년 전이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2019년 7월 3일 영국인 관광객 버나드 채닝(77)은 태국 파타야의 한 극장에서 공포영화 '애나벨 집으로'(2019)를 보던 중 사망했다. 영화 상영 중에는 채닝이 의자에 앉아있어서 사망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장내에 불이 켜진 뒤에야 난리가 벌어졌다. 경찰 조사결과 타살 정황은 없었다. 고인의 일행은 그가 극도의 공포감을 호소했다고 진술했다. 

■공포가 사망률에 끼치는 영향 

'배스커빌 효과'는 코난 도일의 '배스커빌가의 개'에서 따왔다. <사진=pixabay>

공포와 스트레스의 관계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 다만 연구 자체는 매우 활발하며,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스커빌 효과(Baskerville effect)'다. 매달 4일, 한자 문화권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심장 관련 질환으로 죽을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명칭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배스커빌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에서 따왔다. 주인공이 무서운 개와 싸웠으나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내용에서 착안했다. 

배스커빌 효과는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했다. 1989∼1998년 미국 전역에서 숨진 일본인과 중국인, 백인 미국인의 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매달 4일 심장질환으로 숨진 일본인과 중국인이 다른 날보다 7% 많았다. 만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13% 많았고 일본인과 중국인이 많은 캘리포니아의 경우, 이 확률은 27%로 껑충 뛰었다. 백인 미국인들에게서는 이러한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일본인과 중국인도 심장질환 외의 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4일이라고 해서 딱히 많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한자생활권 사람들의 경우, 4(四)가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와 음이 같아 죽음을 연상하게 되고, 건강상태에까지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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