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죄다 하얗게 셌다는 이야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의 이야기. 루이 16세와 함께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 직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는 기록으로 유명하다.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1793년 1월21일 처형된 뒤 같은 해 10월 사형 판결을 받았다. 앙투아네트에 관한 루머가 워낙 많은 편인데, 머리가 하얗게 됐다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사진=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

기록에 따르면, 앙투아네트는 처형되기 전 감옥에서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1793년 10월16일, 흰 옷을 입은 그는 수레에 실린 채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그의 머리는 죄다 흰 색으로 처리돼 있다.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 탓에 처형되기 직전 머리가 하얗게 됐다는 소문을 그림에 반영한 것이다.

동양권에서는 천자문의 저자 주흥사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중국 양나라 사람 주흥사는 무제로부터 한 구절이 네 자로 이뤄진 천자문을 하룻밤 사이에 써내라는 명을 받았다.

‘천지현황’을 시작으로 막힘없이 글을 써내려가던 주흥사의 붓은 마지막 네 자에서 멈췄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끝 구절을 채울 글자들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날이 밝기 직전까지 고민하던 주흥사는 홀연 나타난 귀신이 내뱉은 ‘언제호야’를 받아 적었고, 비로소 천자문을 완성했다.

동이 튼 뒤 주흥사는 경대를 보면서 비로소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걸 알았다. 이야기가 전해지자 사람들은 주흥사의 머리가 하얗게 됐다고 해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 불렀다.

2007년 일본에서는 인기 아나운서의 머리가 하얗게 변해 화제가 됐다. NHK 간판 아나운서 토사카 준이치(48)의 머리는 그해 4월만 해도 멀쩡했으나 5월에 반백이 됐고, 7월 완전히 백발로 변해버렸다.

토사카의 머리색이 변한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 탓인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줬다. 토사카는 팬이 많은 편이었는데, TV에 나온 그를 본 팬들이 NHK로 문의를 하는 바람에 전화통에 불이 났다는 후문이다.

토사카의 머리는 1개월 뒤인 2007년 8월 원래로 돌아갔지만 방송계에서는 염색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처럼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세는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단정한다. 머리카락은 매달 1.5cm밖에 자라지 않는데, 백발이 되려면 적어도 몇 달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카락은 뿌리부터 자라는데, 머리 전체가 하얗게 보이려면 아마도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만 가능하다. 이와 관련,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기 전 머리를 짧게 잘렸다는 기록 때문에 백발이 됐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설도 있다.

물론 토사카 준이치의 경우 하룻밤이 아닌 몇 개월 사이에 백발이 진행된 것이므로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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