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 동안 봉인된 르네상스시대의 편지가 과학자들에 의해 펼치지 않은 채 읽혔다. 마술쇼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놀라운 현상은 2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저널을 통해 발표됐다.
미국과 영국, 네델란드 과학자들은 17세기에 작성되고 봉인돼 아직 펼쳐지지 않은 편지의 내용을 판독하기 위해 X레이 기술과 3D로 다시 펼쳐내는 알고리즘을 사용했다.
문제의 편지는 1926년 네덜란드 헤이그 우편박물관에서 발견된 한 트렁크 속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트렁크에는 3100개 이상의 배달되지 않은 편지가 담겨있었는데, 이 중 577개는 미개봉 및 봉인상태였다. 워낙 오래된 까닭에 자칫 펼치는 과정에서 종이가 부서지기 때문에 이 편지들은 거의 한세기 동안 원형대로 유지됐다.
연구팀은 일단 종이 층을 뚫고 글자를 읽어내기 위해 런던 퀸메리대학교 치과연구실에서 'X레이 미세단층 촬영 스캐너'라는 장비를 사용했다. 이 장비는 원래 치아에 포함된 미세한 미네랄 함량을 검사하기 위한 것으로, 매우 적은 양의 특정물질을 찾아낼 수 있도록 민감하게 설계됐다. 이런 높은 감도를 이용해 연구팀은 편지 안쪽에 적힌 특정 종류의 잉크를 검출해낼 수 있었다.
이어 연구팀은 스캔이미지를 3D 디지털 기술로 재구성, 편지를 접었던 방식 그대로 거꾸로 펼쳐내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DB-1627로 구분된 한 편지 내용을 마침내 해독할 수 있었다.
1697년 7월 31일 씌어진 이 편지는 헤이그에 살던 피에르 르 퍼스에게 사촌 자크 세나크가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내용은 친척인 다니엘 르 퍼스의 공식 사망확인서로, 상속문제에 따른 통지서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수신인은 이사나 기타 이유로 이 편지를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 관계자는 "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는 문서의 내용을 알아낸 사실은 정말 대단하다"며 "이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봉인된 문서 수만개를 읽어낼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