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하면 대부분 1946년 개발된 진공관 컴퓨터 '에니악(ENIAC)'을 떠올릴 것이다. 일부는 1943년 완성된 연산 컴퓨터 '콜로서스(Colossus)'가 최초라고 주장한다. 콜로서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으로 유명해진 암호해독기다.
그러나 그보다도 무려 2000년 전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기계장치 하나가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안티키티라 기계(Antikythera mechanism)로 불리는 이 장치는 과학자들에 의해 '세계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로 인정받고 있다.
1900년 그리스 안티키티라 섬 앞바다에 가라앉은 로마 난파선에서 발견된 이 장치는 기원전 1세기 초 그리스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34㎝×18㎝×9㎝ 크기에 청동으로 만든 정교한 기어들로 채워졌으며,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사용됐다.
기계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돌려 특정 날짜에 맞추면 전면 패널에 태양과 달 등 고대 그리스인에게 알려진 5개 행성의 위치는 물론 일식과 월식까지도 정확하게 표시되는 방식이다.
학계에 따르면 이 정도의 정교한 기어 메커니즘은 1400년 뒤 시계 제조에서 다시 등장했다. 지난 2006년 연구를 진행한 카디프대학교 마이클 에드먼즈 교수는 "이 기계는 모나리자보다 더 가치있다"고 놀라워했다.
발견 당시 기계 장치는 전체의 3분 1밖에 남지 않았고, 수년간의 집중적인 연구와 논쟁에도 과학자들은 이 장치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 없었다. 현재 이 장치는 아테네국립고고학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다른 모조 복원품은 미국컴퓨터박물관과 맨해튼어린이박물관, 독일 카셀 지역에 전시돼 있다.
이번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팀은 마침내 안티키티라 기계의 메커니즘을 컴퓨터 모델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12일 사이언티픽 리포트 저널을 통해 밝혔다.
연구팀은 이전 복제품 제작에 사용했던 모든 연구결과를 활용했다.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처음 고안한 메커니즘과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에 대한 수학적 모델에서 발견된 비문 등을 동원해 결국 2.5㎝에 불과한 공간에 들어가는 복잡한 기어 메커니즘을 구축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연구는 더 큰 질문을 낳았다. UCL의 재료과학자 애덤 외시크는 "이 장치의 복잡함은 당시 기술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감탄했다. 또 이 장치를 드라마 '닥터후'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타디스'에 비유하며 "이는 석기시대에 등장한 타디스 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티키티라 기계가 제작될 당시 발견된 다른 기어는 투석기나 대형 석궁 등에 들어간 커다란 것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당시 투석기나 석궁을 만들어 로마와 공성전에 나섰던 아르키메데스를 가장 유력한 제작자로 꼽고 있다. 오시크는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 공성전 도중 로마인에게 살해당했다"며 "이 장치가 하필 로마의 침몰선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모델 구축에 성공한 연구팀은 완벽한 복제품을 실제 제작, 기계에 숨겨진 사실들을 더 파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