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을 쓴 조선 선조때 문인 권문해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경북 예천에 돌아온 뒤 1582년 3월 8일 밤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하늘이 붉은 색으로 타올랐다가 흰색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내용은 그의 일기 '초윤일기'에 적혀있는데, 이는 199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국학진흥연구사업 일환으로 진행된 문서 발간 작업에 포함돼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당시 하늘에서 괴이한 현상을 발견한 것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리스본에 거주하던 포르투갈 연대기의 저자 페로 루이스 소아레스는 같은 날 "하늘이 모두 불타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현상은 사흘 동안 반복됐다"고 적었다. 이는 일본 교토와 독일 라이프치히 등 동아시아와 유럽의 12개 도시에서 똑같이 목격됐다.

그로부터 439년이 지난 현재, 과학자들은 당시 태양 폭풍(solar storm), 즉 태양 플레어(solar flare)로 인한 오로라 현상을 목격한 세계 각지의 사례들을 찾아냈다. 당시의 플레어 현상은 너무 강해서 오로라가 위도 28도(플로리다, 이집트, 일본 남부 포함)까지 펼쳐졌고, 난생 처음 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종교적 현상으로도 묘사했다.

2013년 5월15일 태양 활동 관측위성(SDO)이 촬영한 태양 플레어 <사진=NASA>

과거의 태양 폭풍은 이처럼 놀라움을 안겨준 것말고는 별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현재는 전력망 차단과 통신 교란, 위성 오작동 등 엄청난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양 폭풍인 1859년 9월 1일 '캐링턴 사건(Carrington Event)' 급이 발생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캐링턴 사건이란 영국 전문학자 리처드 캐링턴이 태양 표면에서 거대한 폭발을 목격한지 5분 뒤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오로라가 목격된 일이다. 당시에는 피해가 크지 않았다.

태양 플레어는 태양 표면의 고에너지 폭발에 의해 발생한다. 엄청난 양의 태양풍을 일으키며 강한 빛과 전파, X선, 전자, 양성자 등을 쏟아낸다. 지구 자기권에 충돌하면 오로라를 생성하고 전자 장치를 파괴하고 통신을 교란시킨다.

태양 폭풍은 또한 치명적인 방사선을 동반한다. 지구는 자기권의 보호로 인해 안전할 수 있지만, 우주인들이나 특히 몇 년 뒤 달에서 임무를 펼칠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NASA)은 1972년 8월 태양 폭풍이 몰려왔을 때 그런 재난을 운좋게 피한 일이 있다. 당시 아폴로16호가 4월 지구로 돌아왔고, 아폴로17호는 12월에 발사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수십년 간 거대한 플레어가 우리를 덮칠 가능성은 얼마이고, 그 경우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태양 플레어는 태양의 활동기에는 하루에 몇 번도 일어나며, 태양의 비활동기에는 주당 한 번도 일어나지 않기도 해 예측하기가 어렵다.

태양 폭풍이 지구 자기권과 충돌하는 상상도 <사진=NASA>

또 캐링턴 사건은 당시 그린란드 빙하에 질산염 및 베릴륨-10의 흔적을 남겼는데, 과학자들은 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 500년간 가장 큰 규모의 플레어라는 사실을 알아 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이 정도 규모는 1000년에 두 번 정도 발생한다고 추정한다.

캐링턴 사건이 일어난지 162년이 지난 현재, 만약 그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피해 규모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이 될수도 있다.

지난 1989년 중간급 플레어로 캐나다 퀘벡 지역의 전력망이 완전히 무너지고 NASA의 통신 위성을 포함한 상당수 위성이 다운돼 수백 가지 결함을 일으켰다. 2012년 7월 23일에 캐링턴급 폭풍이 또 발생했으나, 다행히 지구를 피해 나갔다. 미국 국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그 정도 크기의 태양 폭풍이 지구를 덮치면 피해 규모는 2조 달러(약 2263조원)에 이를 수 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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