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열대어와 산호초 등 풍부한 해양생태계로 유명한 적도 해역이 지구온난화로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다. 이곳을 터전 삼아 살던 해양생물들이 보다 수온이 낮은 해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는 이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를 13일 공개하고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 적도의 많은 생물들이 이탈하는 현재 상황은 대멸종의 징후와 닮았다”고 경고했다.
연구결과를 발표한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 및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연구팀은 1955년 이후 수집된 해양생물 4만8661종의 분포 데이터를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해양생물 종의 다양성은 북극과 남극으로 갈수록 미미해지고 적도 부근에서 극대화된다. 이를 바탕으로 적도를 정점으로 하는 종 모양의 해양생물 분포도를 그릴 수 있다.
다만 연구팀 조사에서는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적도에 해당하는 종의 정점 부분이 움푹 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적도의 생물 종들의 다양성에 큰 변화가 있다는 의미다. 이곳의 다양한 생물들은 보다 낮은 온도의 바닷물을 찾아 북쪽이나 남쪽 아열대로 이동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과거 50년간 적도의 평균 기온은 0.6℃ 상승했다. 고위도 지역에 비하면 변화의 폭이 완만한데도, 적도의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생존 가능한 환경에 머무르기 위해 더 많이 이동해야 했다.
연구팀은 이런 변화가 과거에도 일어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2억5200만년 전 페름기 말기의 대멸종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격렬한 화산활동이 일어나 세계 평균기온이 3~6만년에 걸쳐 10℃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름기의 대멸종으로 지구상의 해양 생물 중 96%, 전체 생물종의 90~95%가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연구팀 관계자는 “화석을 조사한 결과 페름기 대멸종 당시에도 적도의 생물 다양성이 변화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12만5000년 전에도 급격하게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산호초가 열대 바다로 이동, 적도의 생물 분포가 감소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대멸종은 면한다고 쳐도, 적도의 해양생물이 이동하는 것 자체가 생태계에 혼란을 야기한다. 적도 바다에 서식하는 유공충(딱딱한 껍질을 가진 단세포 플랑크톤의 일종)이 가장 풍부했던 것은 1만5000년 전 끝난 가장 최근의 빙하기였다. 이후, 유공충은 계속 감소했고, 지구온난화에 의해 감소세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 플랑크톤은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해양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아열대 바다에서는 생물 종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 적도 등 다른 해역의 생물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이전에 없던 종 사이의 포식·피식 관계가 생기고 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탓이며, 이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결국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연구팀 관계자는 “열대 섬나라 대부분은 참치 조업이 중요한 수입원”이라며 “예컨대 운동량이 많은 참치가 수온이 너무 오른 열대를 이탈할 경우 참치가 지탱해온 현지 어업 자체가 몰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열대 생물을 지키기 위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각국이 제대로 이행하는 한편, 해양생태계를 지키는 직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양의 2.7%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지만, 이는 국제 생물다양성협약(CBD)에서 정한 목표치(2020년까지 10%)를 크게 밑돈다. 이 목표치를 2030년까지 30%로 올리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어업과 군사관계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국가가 적잖은 현실이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