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인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거대한 소행성의 충돌로 인류 멸망 위기에 처했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을 우주의 다른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다면, 몇 명을 보내야 할까.

인류 문명을 재건하기 위한 직업적 배치까지 고려하면 숫자는 늘어날 수 있지만, 단순히 종의 유지 측면에서만 보자면 숫자는 엄청나게 줄어든다.

이는 최근 온라인 논문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 실제로 다룬 내용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의 천체물리학자 프레드릭 마린 등 연구진은 '성간 우주 여행 맥락에서 다세대 인구의 유전적 진화(Genetic Evolution of a Multi-generational Population in the context of interstellar space travels)'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프록시마 b 상상도 <사진=유럽 남부 관측소(ESO) 홈페이지>

연구진은 인류가 새롭게 시작할 장소를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 b'로 설정했다. 이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 행성(4.2광년 거리)이자,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으로도 꼽히는 장소다. 물론 최근 연구를 통해 프록시마 b는 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플레어 현상으로 인해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이 연구는 그 이전에 발표된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에서 참고하는 것이 타당하다.

연구진은 현재 기술로 가능한 최고 속도의 우주선으로 프록시마 b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6300년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승무원 숫자를 결정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유전적 다양성'을 꼽았다.

수백 명만 생존한 인구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근친혼 또는 밀접하게 관련된 개인 간의 결합 문제다. 이는 역사에서도 증명되는데, 16~17세기 스페인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조는 근친혼을 유지한 결과 불임 및 기형으로 인해 몰락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우주선에 탑승할 최소 인원을 98명으로 계산했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이들은 무작위 선발이 아니라 최대한 유전적으로 겹치지 않는 49쌍의 선별된 남녀를 말한다. 이들의 자녀들 역시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이 제한돼야 한다. 연구진은 좀 더 안전한 선택을 위해서 500명을 두 번째 옵션으로 제시했다.

<사진=pixabay>

이에 대해 포틀랜드주립대학교 인류학과 카메론 스미스 교수는 "인구가 수백 명 이하이면 아마도 수 세기 동안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류 역사에도 그 정도 규모의 인구가 수 세기, 또는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런 종말 시나리오를 대비해 실제로 일부 인구를 피난처에 미리 대피시키자는 주장이 실제로 제기되고 있다. 싱크 탱크인 '지구 파멸 위험 협회(Global Catastrophic Risk Institute)'의 창립자인 세스 바움은 "전 지구적인 재앙이 일어날 경우, 안전장치를 마련해 최소한의 일부가 인간 문명을 지속해주길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움에 따르면 모든 피난처에 공통으로 필요한 사항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것을 격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지구 어딘가에 전용 피난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며, 더 야심 찬 것은 우주로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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