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영국 해군 본부는 해군 장교이자 북극 탐험가인 존 프랭클린 경에게 북극을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서항로 개척 임무를 부여한다. 프랭클린 경은 '이리버스(Erebus)'와 '테러(Terror)'라는 이름의 함선 두 척을 이끌고 129명의 승무원과 함께 북극으로 떠난다.

당시 이들의 실패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함선은 획기적인 장비를 갖춘 데다 빙하에 갇히더라도 몇 년간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식량을 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탐험대는 북극에서 실종됐고, 결국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북극을 항해 중인 테러호의 상상도 <사진=sputnik>

1849년 구조대가 여기저기에 흩어진 일부 대원의 묘지와 물품 등을 발견했지만, 탐험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프랭클린의 잃어버린 탐험(Franklin's lost exp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북극 탐험사 중 가장 처참한 실패인 데다 큰 미스터리로 꼽힌다.

1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종자들의 유해와 선박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 2014년 9월에는 탐험대가 실종된 킹 윌리엄 섬 인근 해저에서 이리버스호를 발견해 큰 화제가 됐다. 2007년에는 미국의 유명 작가 댄 시먼스가 이를 소재로 '테러호의 악몽'이라는 소설을 발표해 히트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고학자들이 유해에서 DNA를 추출, 신원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이제까지 발견된 유해는 27구인데, 원정대원들의 이름은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유해가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낸 경우는 없었다.

존 그레고리를 비롯한 3명이 묻혀있는 무덤 <사진=워털루대학교 홈페이지>

연구진은 유해 중 하나의 치아와 뼈 샘플에서 채취한 DNA를 분석, 이리버스호에 탑승했던 해양탐험 엔지니어인 존 그레고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DNA는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사는 조나단 그레고리라는 자손의 DNA와 일치했다. 그레고리는 1845년 7월 9일 그린란드의 항구에서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뒤 소식이 끊겼다.

또 연구진은 그레고리가 얼음에 갇힌 배 안에서 3년간 버텼으며 탈출을 시도하다가 남쪽으로 75km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의 자손인 조나단은 "유전 분석을 통해 조상의 유해를 처음으로 확인한 연구팀에 매우 감사하다"며 "이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불행했던 탐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를 이끈 영국 워털루대학의 인류학자인 더글라스 스탠톤 교수는 "DNA 샘플을 제공해준 그레고리 가족에 감사를 표한다"며 "나머지 유해 26구의 신원을 밝기 위해 다른 탐험대원들의 자손에게도 연락, 그들의 DNA를 사용할 수 있을지를 타진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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