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인들이 꼽은 유행어 '오야가챠(親ガチャ)', 즉 '부모 뽑기'가 동물의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계는 동물계 특권계급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사회의 진화에 뿌리를 둔 불평등의 근원을 통찰할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와 밀스칼리지 공동 연구팀은 최근 논문에서 동물도 분명한 '부모 뽑기'가 있으며, 이 영향으로 권력층이 군림한다고 주장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자원들의 격차는 생존과 직결될 만큼 큰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인간 사회처럼 동물도 계층이 나뉘는 이유가 부모에 있다고 추측했다. 부모의 계급에 따라 새끼가 이른바 금수저도, 흙수저도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영장류와 어류, 조류, 곤충 등 다양한 동물의 사회성과 습성을 살폈다. 그 결과, 부유한 부모를 둔 새끼는 둥지나 세력권, 먹이는 물론 생존 노하우를 얻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붉은날다람쥐는 부지런히 모은 도토리나 솔방울을 태어난 새끼에 물려준다. 이런 습성 때문에 후손들의 적응도 격차가 벌어지고 생존·번식률도 달라진다.
말미잘 틈에 숨어 천적을 피하는 흰동가리(크라운피쉬)는 말미잘 자체를 새끼에 상속한다. 우수한 부모는 상대적으로 큼지막한 말미잘을 물려주는데, 당연히 새끼가 은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번식기 수컷 뇌조들은 가까이에 아버지가 있어야 구애에 유리하다. 아버지가 없는 수컷들은 번식활동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천적의 습격을 잘 피하는 등 뛰어난 뇌조 수컷들은 새끼의 번식에도 뚜렷한 영향을 준다.
아프리카 점박이하이에나들은 어미로부터 사회적 지위를 계승한다. 지위가 높은 어미를 둔 새끼는 우선적으로 사냥감을 포식한다. 어미의 지위가 낮은 새끼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죽기도 한다.
일부 벌의 암컷들은 어미로부터 보금자리를 물려받는다. 좋은 벌집을 얻은 암컷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연구팀 관계자는 "동물도 사람처럼 부모가 새끼에게 물려주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며 "서식지나 먹이는 물론 자신이 활용한 지식이나 특권을 계승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침팬지는 새끼에게 견과류를 깨기 위한 돌을 물려준다"며 "돌은 먹이나 서식지처럼 형체가 있는 도구지만 '사회적 정보' 또는 '생존 지식'의 전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부모와 자식 간의 권리 이전은 특권층 확장을 가속화한다. 좋은 지위와 보금자리, 먹이, 생존 노하우를 얻은 새끼들은 이를 후대에 전하면서 점차 세력을 키운다.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생존 상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대가 끊기기도 한다.
연구팀 관계자는 "점박이하이에나의 경우 특권을 타고난 무리는 우위성 덕에 세력이 커지지만 그렇지 못한 새끼들의 무리는 서서히 약화되고 금세 붕괴한다"고 말했다.
이어 "흥미롭게도 일부 동물은 세력을 합쳐 생존력을 키운다"며 "흰개미의 경우 두 무리가 '합병'해 둥지를 공유한다. 이는 서로의 일족이 자원을 얻을 기회를 높여 특권층으로 도약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언급했다.
동물 사회의 계층 및 불평등을 야기하는 부의 직·간접적 역할을 보여주는 이번 논문은 국제 저널 '행동생태학(Behavoiral Ecology)'에도 게재됐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