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는 높은 지능과 사회성으로 해양생태계 정점에 군림한다. 다른 해양 동물 입장에서 공포 자체인 범고래의 무서움은 사냥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빙상에 피신한 물범을 교묘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 영상이 공개됐다.
B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프로즌 플래닛(Frozen Planet)2’는 최근 범고래 무리가 얼음 위로 도망친 물범을 놀라운 두뇌 플레이로 사지로 몰아넣는 상황을 유튜브로 전했다.
영상에는 바다 위 얼음조각에 갇힌 채 겁에 질린 웨델물범 한 마리가 담겼다. 물범은 추격하는 범고래들에 쫓겨 얼음 위로 겨우 도망쳤다.
범고래들은 수면으로 머리를 내밀어 얼음 위를 관찰했다. 얼음 두께가 얇다는 사실을 파악한 범고래들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얼음 근처까지 헤엄치다 갑자기 잠수하는 식으로 파도를 만들자 얼음 바깥쪽이 조금씩 깨져나갔다. 물범은 점점 작아지는 얼음 위에서 꼼짝도 못 했다.
영상을 분석한 동물행동 전문가는 “범고래들은 얼음을 스스로 깨지 못하므로 물범이 그쪽으로 도망친 것까지는 올바른 선택”이라면서도 “문제는 얼음이 생각보다 얇다는 것과 범고래들이 이를 간단하게 간파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다못한 물범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도 범고래들은 즉시 달려들지 않았다. 사냥감이 극한의 공포에 질리도록 즐기는 범고래들은 바다에 빠진 물범 밑에서 물거품을 만들어 방향 감각을 잃게 했다.
동물행동 전문가는 “파도를 만들어 얼음을 깨는 ‘웨이브 크래싱(Wave Crashing)’은 지구상 범고래 100여 마리만 구사하는 고등 전술”이라며 “물범의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기술은 빙상으로 도망쳐 체력을 소모하게 만든 나름의 응징인 동시에, 쓸데없는 부상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생물학자들은 범고래들이 사냥뿐 아니라 먹잇감 해체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무장 해제된 먹잇감의 원하는 부위만 발라내는 범고래는 간 같이 지방이 풍부한 부분만 특정해 먹기도 한다.
‘프로즌 플래닛2’ 측은 “범고래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도 겁내지 않는다. 실제 몸길이 약 25m에 달하는 긴수염고래를 단 두 마리가 사냥하는 장면도 촬영됐다”며 “일부러 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 혀를 물어뜯는 범고래의 사냥 방법은 똑똑하면서도 잔혹하기 그지없다”고 전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