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머리를 땅에 묻었던 블레미에스(Blemmyae) 족의 의식 흔적이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 발견됐다. 머리 없는 괴물로 묘사되는 블레미에스 족이 고대 이집트인과 교류한 결정적 증거에 관심이 쏠렸다.

폴란드 지중해 고고학 센터와 미국 델라웨어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최근 미국 고고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Archaeology)에 실린 논문에서 이집트 동부 베레니케의 고대 항구 유적에서 블레미에스 족이 치른 것으로 보이는 의식 흔적을 공개했다.

블레미에스는 유럽의 고전이나 고문서에 등장하는 종족이다. 머리가 없는 대신 눈코잎이 가슴에 붙은 기묘한 형체를 한 것으로 묘사된다. 기록 상 이 종족은 리비아 서쪽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베레니케 매의 성지에서 발견된 입방체 상과 공물을 바치는 데 쓴 것으로 보이는 받침대 <사진=미국 고고학 저널 공식 홈페이지>

블레미에스가 괴물로 묘사된 것은 로마인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지리학자 폼포니우스 멜라와 정치가 플리니우스는 블레미에스 족을 머리가 없고 얼굴이 가슴에 붙은 괴물로 소개했다.

연구팀은 신전 재단에서 대부분 목이 잘린 매 15마리를 발견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과 블레미에스 족의 문화가 섞인 종교적 의식을 의미한다는 게 연구팀 판단이다.

2019년 1월부터 연구팀이 조사해온 베레니케 항구는 기원전 284~246년 이집트를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가 건설했다. 홍해 서안에 위치한 베레니케는 로마시대와 동로마제국시대를 거치면서도 건재해 아라비아나 인도에서 오는 무역선의 주요 관문으로 통했다.

매의 머리를 한 콘스 신의 석상과 비석 <사진=미국 고고학 저널 공식 홈페이지>

발굴이 진행된 곳은 베레니케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로 추측되는 신전 ‘노던 콤플렉스(Northern Complex)’다. ‘매의 성지(Falcon Shrine)’로 불리는 이 신전은 로마 후기(4~6세기)의 것으로, 함께 발굴된 기록에 따르면 블레미에스로 불리는 종족이 항구 일부를 지배했다.

조사 관계자는 “블레미에스는 이집트 남부에서 수단에 이르는 누비아 지방의 유목민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이집트 동부 사막지대로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블레미에스에 대한 첫 언급은 기원전 7세기 수단 유적에서 발굴된 비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발굴된 신전은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이지만 4세기 이후 블레미에스가 전한 독특한 종교의 흔적이 가미돼 있다”며 “작살과 입방체 상, 비석들과 대부분 목이 없는 15마리의 매 사체가 결정적 증거”라고 전했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와 조우한 블레미에스를 묘사한 그림. 블레미에스는 가슴에 눈·코·입이 전부 붙거나 외눈만 붙은 형태로 그려졌다. <사진=British Library Royal 공식 홈페이지>

고대 이집트 시대 나일강 유역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매를 숭배했다. 다른 유적에서 머리가 없는 매의 미라가 발견된 적도 있다. 다만 이는 한 마리로, 이번처럼 무더기로 나온 적은 없었다.

특히 연구팀은 ‘여기서 머리를 삶지 말라’는 기묘한 비문에 주목했다. 조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이런 곳에 세워지는 비문은 봉납이나 감사를 표현하지만 매 신전의 비석은 불경한 행위라며 동물의 머리를 삶는 것을 금지했다”며 “이는 이집트와 블레미에스의 전통과 문화가 결합된 의식이 행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당시 블레미에스 역시 이집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매의 머리를 한 이집트 신 콘스를 모신 것으로 추측했다. 아울러 이번 발견이 로마제국 쇠퇴기에 사막 동부에 살았던 반유목민 블레미에스의 실체를 이해할 귀중한 정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서지우 기자 zeewoo@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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