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체취가 사람의 구매 행동에 속도를 붙인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향수 같은 인공 향이 아닌 사람 고유의 체취가 쇼핑 심리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스페인 발렌시아공과대학교는 1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논문에서 타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소비자 행동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을 소개했다.
연구팀은 사람의 체취가 남의 쇼핑 심리에 주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기획했다. 행복감과 공포, 스트레스, 안정감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의 체취를 모은 뒤 이를 피실험자들에게 맡게 했다. 이후 몇 가지 상품을 제시하고 구매 행동을 살폈다.
타인의 체취를 맡은 실험 참가자들은 냄새를 맡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떤 물건을 살지 결정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았다. 또한 세일 가격보다는 정가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체취의 영향을 받은 피실험자들이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시간은 품목별로 차이가 났다. 식품이 가장 빨랐고, 의류와 전자제품이 뒤를 이었다. 행복감을 느낀 사람의 체취를 맡은 실험 참가자는 대체로 음료를 사는 결정을 빨리 내렸다. 공포감, 스트레스에 휩싸인 사람의 체취에 노출된 피실험자는 건강식품에 관심을 보였다.
실험 관계자는 "타인의 체취를 맡은 구매자는 냄새를 맡지 않은 경우보다 어떤 물건이든 쇼핑 결정이 빨라지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번 조사는 사람이 동물만큼은 아니더라도 타인의 체취에 의해서도 감정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학자들은 냄새가 사람 심리에 주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연구해 왔다. 꽃향기가 나는 방과 그렇지 않은 방에 같은 신발을 놓고 판매한 1990년 실험에서 향기가 나는 방의 매출이 84%나 높게 나타났다. 릴랙스 효과로 알려진 라벤더 향은 레스토랑이나 백화점 손님의 체류 시간과 주문 액수를 늘린다는 연구도 있다.
실험 관계자는 "우리 연구는 그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람의 체취와 심리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아직은 가설이지만, 체취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 알리는 중요한 수단임을 짐작하게 된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체취가 나이와 성별은 물론 감정,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정보를 가지며, 이를 맡은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고 결론 내렸다. 냄새와 쇼핑의 과학적 관계를 명확히 알아내면 서비스업이나 관광 등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업계의 마케팅에 유용할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