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생물 무기 사용 가능성을 계속 언급하면서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제연합(UN)이 정의한 생물 무기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생물 또는 독소를 퍼뜨려 인간, 동물, 식물에 해를 끼치거나 사멸시키는 장치 또는 방법'이다. 순식간에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생물 무기는 현대전의 양상을 일순간에 바꿀 전략이지만 지나치게 악랄한 전술로 규정돼 국제사회가 제재하고 있다.

영어 사전에 생물 무기(Biological weapons)가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다. 생물 무기는 현대 전술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인류는 과거부터 전쟁에 생화학 무기들을 이용해 왔다. 히타이트나 로마제국 등 고대를 호령한 세력들은 정복 전쟁에 다양한 생물 무기를 동원했고, 이런 작전에 적은 상당한 공포를 느낀 사실이 역사에 남아있다.

고대인들은 직접 체득한 전염병의 공포를 전쟁에 도입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 위정자들은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는 상황을 반복해서 목격하면서 적을 대량 살상할 생물 무기를 떠올리게 됐다. 

대포가 발명되기 전, 각 제국의 영웅들은 독사나 감염병으로 죽은 동물 사체 등 생물 무기를 이용해 세균전을 펼쳤다. <사진=pixabay>

고대의 화살이나 창 끝에 독이나 배설물, 세균이 우글거리는 진흙을 바르면 그 순간 훌륭한 생물 무기가 된다. 생물 무기에 눈을 뜬 고대인들은 감염되거나 부패한 동물 사체를 적이 식수로 이용하는 우물에 던져 넣었다. 

일부 지도자들은 병원균을 활용한 악랄한 생물 무기를 만들었다. 기원전 1600년 경 현재의 튀르키예에서 시작된 히타이트 제국은 중동에서 상당한 세력을 키웠다. 이집트와 대등하게 싸운 히타이트는 인류 최초의 평화 협정인 카데시 조약을 맺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히타이트가 지독한 병원균을 생물 무기로 썼다고 본다. 히타이트인은 기원전 1320년 무렵 병원균에 감염된 양이나 당나귀를 적이 이용하는 교역로 곳곳에 풀었다. 적들이 그 일부를 마을로 데려가면 멀쩡한 가축들이 야토병(들토끼병)에 걸리고 사람들도 쓰러졌다. 

히타이트의 생물 무기는 키프로스에서 이라크, 이스라엘에서 시리아로 확산되면서 광범위하게 악영향을 미쳤다. 야토병은 지금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과거 미국과 구소련이 잠재적 생물 무기로 비축할 정도로 여전히 까다로운 1급 감염병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독일군이 폰티노 습지에 물을 채워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발생한 탓에 곤욕을 치렀다. <사진=HBO '밴드 오브 브라더스' 공식 스틸>

로마제국은 모기 같은 해충을 전쟁에 적극 이용했다. 로마인들은 로마 남동쪽에 펼쳐진 폰티노 습지를 적의 침입을 막는 방벽으로 사용했다. 이 습지는 말라리아를 전파하는 모기가 우글댔기 때문에 여기를 통과해는 적들은 가혹한 환경에 단숨에 사기가 꺾였다.

학자들은 로마인들이 모기가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피를 빨아대고 피부를 퉁퉁 붓게 하는 것만으로 습지의 효과는 만점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로마인들은 습지의 유해한 공기가 적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어 말라리아는 '나쁜 공기'를 의미한다. 

이 습지 모기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로마인들은 말라리아의 존재를 나중에 알고 습지의 물을 뺐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은 여기 다시 물을 채웠다. 습지는 오랜만에 다시 천연 생물 무기가 돼 연합군의 진군을 방해했다. 독일군의 작전 탓에 1944년 이 지역에 말라리아가 대유행하면서 같은 2차 대전 주축국인 이탈리아까지 피해를 입혔다.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은 독사를 이용해 해전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사진=pixabay>

천재적 전술과 숱한 무용담으로 유명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기원전 184년 벌어진 비티니아와 해전에서 독사를 토기에 넣은 '뱀 폭탄'을 썼다.

당시 대포가 등장하기 전이었지만 한니발은 대규모 해전에서 적의 사기를 꺾을 생물 무기를 사용한 셈이다. 일부 역사가는 한니발이 이런 방법으로 무려 400척 이상의 적 함선을 무력화했다고 본다.

학자들은 다양한 제국이 죽은 동물과 인간의 시체를 적의 성벽 안에 던져 괴롭힌 것도 모두 생물 무기로 간주한다.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은 성문을 잠그고 농성하는 적에게 효과적인 생물 무기였다. 심지어 몽골군이 1346년 카파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할 때 페스트, 즉 흑사병에 걸린 병사의 시신을 적의 성벽에 던졌다는 기록도 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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