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난 화가들은 원하는 색감을 내기 위해 안료나 물감 하나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과거 유럽에서 대가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물감이 하나 있는데, 이름도 독특한 '머미 브라운(Mummy Brown)'이다. 말 그대로 미라를 으깨어 만든 것으로, 그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품에 사용될 정도로 유행했다.
유럽의 많은 화가들이 애용한 '머미 브라운'은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물론 명칭만 '머미 브라운'이지 실제 원료는 미라와 전혀 관련이 없다. 다만 16세기 무렵 등장해 약 3세기 동안 명성을 떨친 진짜 '머미 브라운'에는 수입된 고대 이집트 사람 및 고양이 미라의 가루가 들어갔다.
이 기묘한 물감이 만들어진 배경을 둘러싸고 아직 설이 많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미술사학자들은 '머미 브라운'의 질감이 우수하고 진득한 갈색을 내는 데다, 유채든 수채든 어울리고 투명감도 뛰어나 화가들이 애용했다고 본다. 실제로 화가들은 '머미 브라운'을 구해다 음영이나 피부색, 광택 표현에 두루 사용했다.
'머미 브라운'은 라파엘 전파 화가들, 그러니까 대략 19세기까지 통용됐다. 누가 썼는지 모두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작가 몇 명은 이미 추려졌다. 우리가 알 만한 인물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작가 에드워드 번 존스, 초상화 대가 윌리엄 비치다. 들라크루아는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도 '머미 브라운'을 사용했다.
당시 화가들이 '머미 브라운'에 사람 미라의 분말이 들어간 것을 알았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술사학자들은 적어도 '머미 브라운'의 재료를 알게 된 화가들이 대부분 사용을 자제한 것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플로리다주립대 미술사학과 관계자는 "에드워드 번 존스는 물감의 정체를 알고 크게 탄식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머미 브라운'이 곧 사람의 시신이라고 인식, 정중하게 의식을 치러주고 마당에 매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에드워드 번 존스는 조카이자 '정글북'의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과 물감이 든 튜브를 땅에 묻었다. 고대 이집트 기록을 샅샅이 찾아 망자, 특히 죽은 파라오를 매장하는 전통 의식을 알아냈다. 에드워드 번 존스는 고대 이집트 멤피스의 실제 의식을 최대한 고증해 물감에 갈려 들어간 고대 이집트인을 추모했다.
미술사학자들은 20세기 들어 '머미 브라운'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고 본다. 안료의 유래가 밝혀지자 '머미 브라운'을 구입하는 것은 곧 사람 시신을 사고파는 것과 다름없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화가는 짙은 갈색이면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머미 브라운'을 끊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과거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인간의 미라를 물감은 물론 약재, 심지어 음식 재료로 활용했다. 이런 해괴한 미라 사용법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말들이 많다.
서지우 기자 zeewoo@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