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진공 상태에서도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본연의 소리보다는 에너지 전달에 의미를 둔 이번 연구는 극소 전자 디바디스 개발에 응용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핀란드 이위베스퀼레대학교 연구팀은 23일 공개한 실험 보고서를 통해 짧은 거리 등 제한적 조건을 더하면 진공 상태에서도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리는 공기 등이 떨리면서 전해진다. 진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전달될 리 없다는 게 상식이다. 리들리 스콧(85) 감독은 이 사실에 기반한 문장 '우주에서 너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는다'를 1979년 영화 '에이리언'의 메인 카피로 썼다.
연구팀은 소리와 진공에 대한 상식이 뒤집힐 수 있다는 전제하에 여러 실험을 진행했다. 압전체를 이용해 소리를 전기장 파장으로 변환하면 진공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고 여긴 연구팀은 산화아연에 눈을 돌렸다.
실험 관계자는 "배터리 음극재 제작에 활용되는 산화아연은 우리가 고안한 전기장 터널을 만들기 적합했다"며 "진공에서 소리가 전달되지 못하는 규칙을 깬 것은 물질에 압력을 가하면 그에 비례한 분극이 나타나는 압전 효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장은 전하에 힘을 미치는 공간이므로 음파가 닿으면 전기가 발생, 그 주변 전기장을 어지럽힌다"며 "산화아연 결정 2개를 배치해 진공 속에 전기장 터널을 형성한 실험에서 우리의 가설은 보기 좋게 입증됐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소리가 전기장 터널을 통과, 진공 건너편으로 전해진 실험은 전례가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공 중에서 두 산화아연 결정 사이의 극히 짧은 거리에 음파를 보내는 기술은 국방 관계자들도 관심을 갖는 극소 전자 디바이스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실험 관계자는 "전기장 교란은 음파 파장보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고 음파 일부가 뒤틀리거나 반사돼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도 "음파가 가진 에너지를 100% 전달하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는 극소 전자 디바이스 개발에 응용될 가능성이 얼마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