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없는 해파리가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비결은 과거 경험을 이용한 학습 덕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파리가 기억을 이용해 뭔가 배운다는 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독일 킬대학교 신경생물학 연구팀은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실험 보고서를 발표했다. 자포동물로 눈과 코, 귀는 물론 심장과 뇌 등 주요 기관이 없는 해파리가 가진 의외의 학습 능력에 학계 관심이 쏠렸다.

연구팀은 해파리가 기본적인 신경계와 바깥 상황을 파악할 일종의 센서만 갖고 어떻게 사는지 살펴봤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는 2021년 해파리가 온몸에 분산된 신경들을 조직적으로 연결·활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킬대학교 학자들은 한발 나아가 해파리의 학습 능력의 구조를 파헤쳤다.

연구팀은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 등이 널린 카리브 연안의 상자해파리를 실험에 동원했다. 4방사 대칭형으로 이름에 상자가 들어간 이 해파리는 촉수포(rhopalia)로 불리는 감각기관 4개를 가졌다. 각 촉수포에는 대략 1000개의 광수용체가 밀집해 있다.

단순한 신경계만으로 학습이 가능함을 보여준 상자해파리 <사진=Jan Bielecki>

연구팀은 상자해파리를 수조에 넣고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수조는 최대한 상자해파리가 사는 카리브해 연안의 수중 생태계를 모방했다. 특히 투명한 수조 한쪽 벽에는 맹그로브 나무뿌리를 재현한 얼룩무늬를 넣었다.

수조를 헤엄치던 상자해파리는 슬그머니 얼룩무늬 틈을 빠져나가려 했다. 유리 벽 때문에 통과하지 못한 해파리는 7분30초에 걸쳐 몇 번 더 시도하며 수조 벽에 부딪힌 해파리는 장애물의 존재를 알아챈 듯 무늬가 있는 수조 벽과 거리를 유지했다.

다음 실험에서 연구팀은 상자해파리를 수조에 넣고 보다 희미한 얼룩무늬가 움직이는 동영상을 틀었다. 그러자 해파리는 얼룩무늬가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한 듯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촉수포를 절개한 뒤 가벼운 전기를 흘리자 해파리는 얼룩무늬가 근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 듯 장애물을 피하려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상자해파리는 투명한 수조 한쪽 면에 익숙한 해초 무늬가 등장하자 평소처럼 통과하려 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까지 약 7분이 걸렸다. <사진=커런트 바이올로지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해양생물은 인간보다 신경계가 단순하다. 문어는 중추신경이 없음에도 다리에 분포하는 신경세포 약 5억 개의 네트워크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놀랄 만큼 잘 움직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갯민숭달팽이는 문어만큼 촘촘하지는 않지만 2만 개의 신경세포로 제대로 학습할 수 있다"며 "우리가 조사한 상자해파리는 그보다 더 단순한 신경계를 갖고도 과거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는 걸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이 아주 단순한 신경세포와 외부 자극만으로 동물들이 얼마든 학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상자해파리처럼 뇌가 없는 자포동물의 학습 능력은 태고 때부터 정해진 신경세포의 근본 메커니즘일 수도 있다는 게 연구팀 입장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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