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고대 생물의 DNA를 얻기 위해서는 화석을 발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은 사상 최초로 흙 속에서 고대 동물의 DNA를 발견, 염기서열을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덴마크와 영국, 미국의 유전학자들은 19일 '커런트 바이올로지' 저널을 통해 고대 동굴 바닥의 흙에서 'eDNA(environmental DNA, 환경DNA)'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유전학자 에스케 빌러슬레프 교수는 "동물이나 인간이 소변이나 대변을 보면 세포도 함께 배설된다"며 "이같은 eDNA를 토양 샘플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DNA 채취 및 분석 설명도 <사진=커런트 바이올로지 홈페이지>

샘플을 채취한 멕시코의 치키후이트 동굴은 해발 2740m의 외딴 곳으로, 3만~2만5000년전 석기가 발견된 고고학 유적지다. 연구진은 이 곳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 인간이 떠난 뒤인 1만6000년전 곰과 박쥐, 들쥐 등 다양한 동물들이 동굴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첨단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이용해 처음으로 이같은 eDNA의 게놈(유전체)을 재구성해냈고, 이를 통해 조건만 맞으면 소변이나 대변 속에서도 1만년 이상 DNA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또한 발견된 DNA 중 아메리카 흑곰(Ursus americanus)의 조상뻘인 흑곰과 1만1000년전 빙하기 말에 멸종된 짧은얼굴곰(Arctodus simus)에 주목했다. 이 두 종의 게놈을 현재의 곰 및 2만2000년전 캐나다의 유콘에 살았던 짧은얼굴곰 등의 게놈과 비교했다.

그 결과 이 동굴에서 살았던 흑곰은 알래스카에 살고있는 흑곰과 조상이 같으며 현재의 미국 흑곰과는 핏줄이 갈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동굴 속 짧은얼굴곰 역시 캐나다에서 발견된 화석과는 뚜렷하게 다른 개체라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는 토양에서 추출한 eDNA 분석을 적용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의 훌륭한 예"라고 지적했다.

치키후이트 동굴 샘플 채취 작업 <사진=Devlin A. Gandy 홈페이지>

빌러슬레프 교수는 "이처럼 토양에서 발견된 DNA 분석은 종의 진화부터 기후 변화까지 모든 것에 대한 개연성을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화석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유전학 분야에서는 '달 착륙'에 맞먹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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