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발굴된 고대 이집트 왕비의 무덤에서 잘 밀봉된 포도주 항아리들이 뒤늦게 출토됐다. 학자들은 고급 포도주를 담은 항아리들이 무덤 주인의 엄청난 권력을 상징하며, 첫 여성 파라오를 가리키는 주요한 증거일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이집트관광유물부와 오스트리아 빈대학교는 최근 공식 채널을 통해 이집트 제1왕조(기원전 3100~2900년) 시기의 왕비 메르네이트의 무덤 발굴 보고서를 공개했다. 메르네이트는 부왕 제르의 사후 남매 겸 부군 제트가 즉위하자 섭정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메르네이트 여왕의 무덤은 이집트 나일강 서안 사막의 고대 도시 아비도스와 가까운 움 엘 카압에 자리한다. 주변에는 제르와 제트 등 남성 파라오들의 무덤도 존재했는데, 제1왕조 통치자들을 새긴 비석에는 메르네이트의 이름이 빠져 학자들은 그가 파라오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메르네이트 왕비의 무덤에서 발견된 수많은 포도주 단지들 <사진=이집트관광유물부·빈대학교 공식 홈페이지·EC Kohler>

무덤에서 포도주 항아리들을 새로 발견한 이집트와 독일, 오스트리아 합동 발굴팀은 메르네이트 왕비가 생각보다 대단한 지위를 누렸다는 입장이다.

포도주 항아리 외에 이집트 제1왕조 때의 매장 풍습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부장품이 다수 나왔는데, 하나같이 고급인 점은 메르네이트가 일부 학자들 생각대로 이집트의 첫 파라오임을 가리킨다고 연구팀은 결론 내렸다. 

조사 관계자는 "이번 발굴을 통해 학계는 메르네이트 여왕의 생애와 통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됐다"며 "무덤가에서 이미 출토된 파라오 명판에 메르네이트의 이름은 없었지만 그의 역할은 제1왕조에서 아주 중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Y로 표기된 것이 메르네이트의 무덤이다. 다른 남성 파라오의 것들과 규모나 양식이 비슷해 권세가 대단했을 것으로 추측돼 왔다. <사진=이집트관광유물부·빈대학교 공식 홈페이지·EC Kohler>

메르네이트는 이집트 여신 네이트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집트 역사에서 존재감이 대단하다. 제1왕조 4대 파라오 제트가 죽은 뒤인 기원전 3050~3000년 이집트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을 것으로 생각돼 왔다.

조사 관계자는 "제트가 죽고 후임자인 덴이 왕위에 오르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으로 메르네이트는 다시 섭정에 나섰다"며 "그의 섭정 기간이 덴이 성인이 될 때까지로 본다면, 적어도 10년 넘게 이집트 최고 권좌가 그의 차지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무덤 속 포도주 항아리와 화려한 부장품은 이집트를 최초로 지배한 여왕으로 여겨지는 메르네이트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게 해준다"며 "이번 발견은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여성 지도자의 역할이나 지위에 관한 연구에 아주 유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항아리 안에는 포도씨 등 포도주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무려 5000년 전 것 것들이다. <사진=이집트관광유물부·빈대학교 공식 홈페이지·EC Kohler>

그간 학계는 메르네이트가 이집트를 지배한 최초의 여왕인지 둘러싸고 숱한 논쟁을 벌였다. 그가 첫 여성 파라오라고 보는 학자가 적잖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이집트 첫 파라오는 한때 남자로 오해를 산 네이트호텝이라는 주장도 여전하다. 여성이 권좌에 오른 것은 고대 이집트 제1왕조가 막을 내리고 수 세기 뒤의 일이라고 보는 학자도 적잖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