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 능한 고대 수메르인은 이미 4000년 전 가뭄에 대비한 혁신적 관개시설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대영박물관 연구팀은 최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1929년 이라크에서 발굴된 수메르 고대 도시 기르수(Girsu)의 다리 구조물은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고도의 관개시설이라고 전했다.

기르수의 다리는 길이 약 19㎞의 운하 중간에 자리한다. 고대 도시나 농지에 물을 댈 목적으로 판 운하의 중앙에 자리한 다리는 하늘에서 볼 때 거의 좌우 대칭형이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 일부는 특이한 형태의 신전이라고 생각했다.

대영박물관 연구팀은 2018년부터 이곳을 정밀 재조사했다. 촬영용 드론을 띄워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찍고, 5년에 걸쳐 유적 곳곳의 손상된 부분을 복구한 연구팀은 대칭형 구조물이 다리도, 신전도 아닌 농업시설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여겨져온 수메르 고대 도시 기르수의 기묘한 구조물. 고도의 관개시설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사진=대영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현재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 근처에 자리한 기르수는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수메르인의 지배를 받았다"며 "수메르 문명에서 아주 중요한 도시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혁신적인 농업 기술을 바탕으로 융성했다는 점에서 실제 용도를 추측해 나갔"고 전했다.

기원전 4500~1900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번성한 수메르 문명은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기르수의 기묘한 구조물을 5년간 분석한 대영박물관 연구팀은 농업에 필요한 물과 관련된 시설이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조사 관계자는 "역사·고고학자들은 이 정도 규모의 관개시설이 빨라야 18세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고대 수메르인들은 운하가 말라붙는 것을 막고 극심한 가뭄을 피하기 위해 오래 전 이 구조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사람들은 가뭄이 닥치면 운하가 차례로 말라가는 상황을 목격했을 것"이라며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가뭄, 그리고 붕괴를 방지하는 건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정체불명의 다리 구조물은 길게 형성된 고대 수메르의 운하 가운데 자리한다. <사진=대영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고대 수메르 문헌에 풍요와 물의 신 닝기르수(Ningirsu)를 위한 제사가 기재된 점에서 당시 사람들이 가뭄을 피하고 풍년을 맞기 위해 신에 의존했다고 봤다. 다만 기원전 2000년 무렵 극심한 가뭄이 들자 수메르인들의 신이 기도에 응하지 않는다고 여겼고, 자연스럽게 관개기술에 눈을 떴다는 게 연구팀 생각이다.

조사 관계자는 "길이 40m, 폭 10m, 높이 3.3m의 구조물은 곡선을 그리는 운하에 인접해 있다"며 "이런 구조물은 원래 나시리야까지 뻗은 총길이 19㎞의 운하 곳곳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메르인의 관개시설은 운하를 흐르는 유속에 뚜렷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유체가 단면적이 좁아지는 구간을 흐를 때 압력이 감소하는 벤추리 효과의 흔적이 유적 일부 구간에 남았다"고 놀라워했다.

연구팀은 수메르인이 창의력을 총동원해 만든 관개시설을 면밀히 조사하면 고대인의 치수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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