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박새가 먹이를 숨긴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는 비밀을 풀어낼 유전자가 처음 특정됐다. 까마귀 버금가는 기억력으로 유명한 산박새는 현재 멸종 위기 관심 대상종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볼더(UCB) 조류학 연구팀은 17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서 숲에 은밀하게 식량을 숨기고 겨울을 나는 산박새의 기억력 관련 유전자 약 100개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몸길이 10~12㎝, 체중 약 20g인 산박새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 서식한다. 잡식성으로 애벌레나 곤충 외에 침엽수의 씨앗을 먹는 산박새는 나무 밑을 시작으로 숲 온갖 곳에 먹이를 숨기는 습성으로 잘 알려졌다.
조사 관계자는 "로키산맥 등 눈이 많고 추운 혹독한 곳에 사는 산박새는 겨울에 대비해 식량을 저장한다"며 "콩알 정도 크기의 뇌를 가진 산박새가 뛰어난 기억력을 발휘하는 비결은 오랜 미스터리였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지정된 발신기에만 입구가 열리는 먹이통 8개를 설치하고 실험에 나섰다. 각 먹이통 내부에 산박새가 좋아하는 씨앗을 가득 넣은 후 서로 다른 주파수의 발신기를 부착한 산박새 162마리를 모아 먹이활동을 관찰했다.
조사 관계자는 "산박새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먹이통을 제대로 외우지 않으면 씨앗을 수월하게 모을 수 없었다"며 "이번 실험에서는 산박새들이 자신에게 지정된 먹이통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때까지 잘못된 먹이통에 머문 횟수를 계산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시행착오가 가장 적은 개체, 즉 공간 기억력이 높은 산박새들을 추려냈다. 이들의 혈액을 채취한 연구팀은 산박새의 기억력과 관련된 유전자 97개를 파악했다.
분석 결과 이들 유전자 대부분은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해마의 활동과 관련됐다. 특히 이들 유전자에 변이를 가진 개체일수록 자신에게 지정된 먹이통을 외우기까지 틀리는 횟수가 적었다.
연구팀은 산박새의 조상도 먹이를 숨기는 습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기억 관련 유전자를 진화시켰다고 추측했다. 조사 관계자는 "현재 볼 수 있는 산박새 7종 중 2종은 먹이를 숨기지 않는데, 이들은 먹을 것이 풍부한 온난한 지역에 살며 먹이 보존 습성을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