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오래된 무덤에 박혀 있던 녹슨 검의 기원이 이슬람 제국이라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1994년 발렌시아에서 발굴된 이 낡은 검은 아서 왕의 전설을 따 엑스칼리버로 명명됐으며, 연대나 주인을 둘러싼 의견이 지금껏 분분했다.
발렌시아 시의회 고고학 연구소는 최근 조사 보고서를 내고 발렌시아의 엑스칼리버는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10세기 경의 물건이라고 주장했다.
이곳 연구팀은 30년간 연대조차 특정할 수 없던 철검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길이 45.72㎝의 검은 청동판으로 장식된 손잡이가 특징이며 칼날은 칼끝을 향해 완만하게 굽었다.
조사 관계자는 "칼의 형태는 게르만의 일파 서고트 족의 것과 비슷해 많은 학자를 헷갈리게 했다"며 "발굴로부터 30년이 흐르는 사이 연대 측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검이 1000년 전 이슬람 기마병의 것일 가능성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정확한 연대를 알기 위해 엑스칼리버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크로스 가드(손잡이와 날을 연결하는 부위의 장식)가 없는 점, 칼날이 길지 않고 휜 점 등 특징들을 다양한 문화권의 무기와 대조한 결과, 검이 서고트 족의 것이 아닌 11세기 초까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지배한 이슬람의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조사 관계자는 "엑스칼리버가 418~711년 서고트 시대의 무기인지, 711~1492년 이슬람 시대의 것인지 가른 것은 검의 형태 분석 및 정확한 연대 측정의 결과"라며 "발렌시아의 토양은 유물이 깨끗하게 남기 어렵지만 엑스칼리버는 비교적 잘 보존돼 연구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형태의 검은 우마이야 왕조의 압드 알 라흐만 3세가 스페인 코르도바에 지은 메디나 아자하라 궁전 유적에서 단 하나 나왔다"며 "발렌시아의 오래된 철검 엑스칼리버는 11세기 전후 이슬람과 유럽 역사를 통찰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학계는 엑스칼리버에 관한 이번 연구가 이베리아반도 지배의 변천사를 되짚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대했다. 당초 엑스칼리버의 주인으로 여겨졌던 서고트 족은 이베리아반도에 견고한 기독교 왕국을 만들었고, 이슬람이 영역을 확장하기 전까지 존속했다.
조사 관계자는 "서기 711년부터 1492년은 발렌시아를 포함한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 통치 하에서 알 안달루스로 불리던 시절"이라며 "발렌시아는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 제국의 중심지로서 이슬람 학문과 예술 혁신의 중심지로 번창했다"고 설명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