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의 치명적인 감염병을 막을 단서를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발견했다. 바나나는 일명 파나마병이라는 감염병에 취약해 1950년대까지 주로 재배되던 그로 미셸 품종이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캠퍼스(UMA) 연구팀은 1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에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바나나의 고질병인 파나마병의 감염을 막을 단서를 알아냈다고 전했다.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과일 중 하나다. 바나나는 여러 품종이 있는데 최근 주류인 캐번디시는 1990년대 이후 파나마병의 지속적인 감염 위험성이 제기돼 왔다. 캐번디시 이전에 주류였던 그로 미셸은 파나마병 유행으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재배가 어려워지는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바나나 파나마병을 일으키는 진균병원체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의 유전자를 10여 년간 분석해온 연구팀은 최근 바나나 감염을 억제할지 모를 힌트를 떠올렸다.

조사에 참여한 UMA 분자생물학자 리 준 마 교수는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은 식물 내에서 액체의 운반을 담당하는 관다발에 이상을 발생시켜 물이나 영양분 이동을 차단하는 시듦병을 유발한다"며 "이 진균병원체는 대략 120종의 식물에 감염되며 특정 균주는 인간에게도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나나 농가들은 1950년대 발생한 바나나 파나마병의 유행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푸사리움 옥시스포룸 내성이 보다 강한 캐번디시 품종을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이후에는 캐번디시가 바나나 재배의 주류가 됐다. 물론 그로 미셸도 여전히 출하는 되고 있다.
리 준 마 교수는 "1990년대에 들어서자 그로 미셸에 타격을 준 것과는 다른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2010년 연구에서는 이 진균병원체의 게놈이 모든 계통에 공유되는 코어 게놈과 특정 식물 숙주의 감염 등을 유발하는 액세서리 유전자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즉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은 액세서리 유전자를 특정 작물에 적응시킴으로써 다양한 식물에 대한 감염 능력을 높이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파나마병의 원인 진균병원체 푸사리움 옥시스포룸 f.sp.cubense tropical race 4(Foc TR4)가 그로 미셸에 피해를 입힌 병원체와는 기원이나 액세서리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리 준 마 교수는 "Foc TR4의 액세서리 유전자 조사 결과 일부가 캐번디시에 유독한 일산화질소를 방출하는 것이 판명됐다"며 "캐번디시를 감염시킨 Foc TR4 자신은 일산화질소를 해독하는 화학물질을 생성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Foc TR4의 새로운 액세서리 유전자를 제어하면 일산화질소의 독성을 줄이는 방법도 개발될 것"이라며 "현재 바나나 농가는 캐번디시로 거의 단일화됐지만 Foc TR4에 내성이 있는 새 품종을 특정·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