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장어의 치어는 포식자가 집어삼켜도 소화관을 거슬러 아가미를 통해 탈출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동물계 전체에서 이런 드라마틱한 탈출극이 확인된 사례가 없어 학계가 주목했다.

일본 나가사키대학교 연구팀은 9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이 같은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게재했다. 연구팀은 일본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익숙한 식재료 뱀장어의 개체가 꾸준히 줄자 그 생태를 해명하기 위해 추적 관찰을 진행해 왔다.

나가사키대 환경과학자 하세가와 유하 연구원은 "남획과 환경오염으로 개체가 급감하는 뱀장어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생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에 뱀장어 치어가 가진 어마어마한 생존 전략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혔다"고 말했다.

장어 소비가 많은 일본에서는 치어 단계부터 개체를 보호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pixabay>

이어 "뱀장어 치어가 큰 물고기 체내에 들어간 뒤 탈출하는 사실은 이전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면서도 "지금까지 학자들은 치어가 포식자의 입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여겼지만 우리 연구는 탈출 루트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남방동사리와 뱀장어 치어에 각각 조영제를 주입하고 관찰했다. 민물고기인 남방동사리는 뱀장어 치어를 즐겨 사냥한다. 연구팀은 기존 학설대로 치어들이 남방동사리 입을 통해 도망칠 것으로 예상했다.

남방동사리 아가미 틈으로 빠져나오는 뱀장어 치어 <사진=나가사키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포식자의 위까지 도달한 치어는 갑자기 꼬리를 식도에 박고 몸을 마구 비틀어가며 뭔가를 찾는 듯했다. 이윽고 아가미를 발견한 치어는 그 틈으로 꼬리를 살짝 집어넣었다. 치어는 다시 몸부림쳐 마지막에는 머리까지 빠져나와 탈출했다.

하세가와 연구원은 "뱀장어 치어가 포식자 뱃속에서 살아서 나가기 위한 제한 시간은 길어야 200초였다"며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힌 뱀장어 치어 34마리 중 목숨을 건진 것은 9마리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남방동사리 위장에 도달한 뱀장어 새끼는 역류해 아가미로 빠져나간다. 물론 탈출구를 못 찾아 죽는 경우도 많다. <사진=나가사키대학교·커런트 바이올로지 공식 홈페이지>

연구원은 "아가미 틈으로 꼬리를 내밀기는 했지만 거기서 힘이 다한 치어도 있었다"며 "희대의 탈출극을 보여준 뱀장어 치어 외의 개체들은 탈출구를 찾아 몸부림치다 200초를 기점으로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됐다"고 언급했다.

학계는 천적에 잡아먹힌 뒤 위장과 식도를 거슬러 빠져나가는 사례가 동물계 전체에서도 극히 드물다며 관심을 보였다. 연구팀은 뱀장어 특유의 점성과 위산에도 견디는 피부를 비결로 꼽았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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