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말벌(Vespa orientalis)은 무려 농도 80%의 알코올도 대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연구에서 밝혀졌다. 일부 동물은 천연 알코올을 통해 칼로리를 얻는데,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농도 4% 이상의 에탄올을 섭취하면 부작용이 크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이스라엘 네게브벤구리온대학교 행동생태학 연구팀은 21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냈다. 연구팀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널리 서식하는 오리엔트 말벌의 알코올 대사 능력이 지구의 모든 동물 중에서 거의 정상급이라고 결론 내렸다.
자연계에서는 꽃이나 과일이 부패해 발효할 때 에탄올이 생성된다. 이 에탄올이 훌륭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은 원숭이부터 아프리카코끼리, 조류, 곤충 등이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에탄올을 너무 많이 먹으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섭취량은 종마다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연구팀은 오리엔트 말벌이 어마어마한 에탄올 내성을 가진 비결로 맥주 제조나 빵 발효에 쓰이는 천연 양조효모를 들었다. 조사 관계자는 "효모는 원래 추운 지방에서 살지 못하므로 겨울 동안 말벌의 배에서 번식한다. 효모는 그 대가로 말벌이 먹는 과일을 발효시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효모가 가진 발효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말벌은 알코올 내성을 키워주는 유전자 사본을 여러 개 갖도록 진화한 듯하다"며 "특히 이번 조사 결과는 일부 학자가 제기해온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상당 부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술에 취한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가설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일부 학자는 곤충에서 영장류까지 다양한 동물이 수백만 년에 걸쳐 발효된 과일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고, 인간의 조상 역시 에탄올에 익숙했기에 인간과 알코올의 복잡한 관계가 탄생했다고 본다.
조사 관계자는 "2000마리 넘는 오리엔트 말벌에 농도 80%의 에탄올 용액을 급여하자 정상적으로 날지도, 똑바로 걷지도 못할 만큼 취했다"며 "개중에는 벌렁 들어누운 개체도 있었지만 몇 분 후에 확인하니 완전히 회복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더 놀라운 것은 술을 마신 오리엔트 말벌이 에탄올을 대사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짓기를 했다는 사실"이라며 "반면 대조군으로 택한 꿀벌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24시간 안에 모두 죽고 말았다"고 전했다.
에탄올은 저농도일 때 동물에 유익할 수 있지만 죽은 꿀벌의 사례처럼 일정 농도를 넘기면 독약이 된다. 그래서 초기 실험에서 연구팀은 농도가 20%인 에탄올 용액을 사용했다. 이는 양조효모가 자연적으로 만드는 알코올 농도의 한계다.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자 연구팀은 최종적으로 알코올 농도를 80%까지 올리기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오리엔트 말벌이 고농도 알코올에 적응한 이유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팀은 항균 작용을 하는 에탄올을 섭취함으로써 말벌들이 몸을 건강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오리엔트 말벌은 썩은 고기를 모아 유충에 급여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