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눈이 없는 균류가 도형을 인식하는 등 인지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균류의 인지 능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본 도호쿠대학교 후카사와 유 부교수 연구팀은 24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나무를 분해해 살아가는 목재부후균이 도형을 구분한다고 전했다. 연구팀의 성과는 지난달 말 도호쿠대학교 공식 채널을 통해 먼저 소개됐다.
연구팀은 목재부후균이 먹이로 삼는 나무조각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배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균사체들은 서로 감지한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적으로 공유해 성장 방향을 결정했다.
세부적으로 연구팀은 목재를 썩히는 목재부후균의 하나인 비로드유색고약버섯(Phanerochaete velutina)을 이용해 균사 네트워크를 통한 지적 행동을 살폈다. 버섯을 정착시킨 나무조각을 동그라미 또는 가위표 형태로 놓고 균사의 성장을 관찰했다.
그 결과 버섯은 동그라미냐 가위표냐에 따라 균사를 퍼뜨리는 방법을 바꿨다. 예컨대 가위표에서는 가장 바깥쪽에 놓인 4개의 나무조각에서 균사 네트워크 발달이 두드러졌다. 이는 가장 바깥쪽의 나무를 일종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안쪽 나무보다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동그라미의 경우 균사 네트워크는 어느 나무조각에서나 비슷하게 발달했지만 원의 안쪽으로 퍼지는 경우는 없었다. 이는 네트워크 밀도가 충분한 상황에 안쪽까지 균사를 뻗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결과로 여겨진다. 일련의 행동에서 연구팀은 각 균사가 주위 정보를 네트워크 전체에 보내 성장 방향을 결정했다고 파악했다.
후카사와 교수는 "균류는 뇌나 눈이 없지만 실험에서 관찰된 행동은 뇌가 도형의 차이를 인식하는 프로세스와 비슷했다"며 "뇌가 없는 곰팡이가 펼치는 일종의 통신망이 비결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교수는 "분류학 상 독자적인 계를 구성하는 균류는 식물이나 동물과 전혀 다르지만 그 행동은 어딘가 동물처럼 느껴지곤 한다"며 "우리 연구에서는 기억이나 학습, 결정 등 지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균류가 균사라는 실과 같은 구조를 지하로 넓혀 성장하는 특성에도 주목했다. 식재료로 익숙한 버섯은 사실 포자를 흩트리기 위한 기관이고 본체는 균사로 구성된 균사체다. 평상시 보이지 않지만 지하에 퍼지는 균사 네트워크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범위하다.
후카사와 교수는 "단일 균사만 따져도 축구장 1000개 이상에 해당하는 넓이까지 퍼지기도 한다"며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균류는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도형의 차이에 따라 균사체 네트워크의 활성이 다른 이번 실험은 도형의 차이에 따라 뇌의 신경망 활성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 즉 뇌의 도형 인식 과정과 상당히 비슷해 놀랍기만 하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