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나 구급차 운전자들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치매 중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는 뇌신경세포가 서서히 사멸하는 진행성 질환으로 환자는 물론 주변과 사회에 주는 부담이 상당하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교 브리검매사추세츠병원은 최근 낸 조사 보고서에서 택시나 구급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사망 위험이 다른 사람들보다 낮다고 주장했다. 병원 연구팀은 400종 넘는 직업 종사자의 뇌 건강을 면밀히 분석,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번 조사에서 연구팀은 미국 정부가 관리하는 인구 통계 데이터(National Vital Statistics System) 중 443개 직업 종사자 약 900만 명의 3년 치(2020~2022) 자료를 추출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대부분 일평생 한 직업에 종사했다.

900만 명 중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한 사례는 약 3.88%(34만8328명)였다. 택시 운전자의 경우 1.03%(1만6658명 중 171명), 구급차 운전자는 0.74%(1348명 중 10명)로 각각 집계됐다. 연구팀은 비슷한 직업군인 버스 운전사는 3.11%, 비행기 조종사는 4.57%인 점에 주목했다.
조사를 이끈 뇌신경학 전문가 비샬 파텔 박사는 "매번 목적지가 바뀌는 택시나 구급차 운전자는 노선이 정해져 있는 버스 기사, 비행기 조종사와 달리 어떡하면 효율적으로 이동할까 늘 생각한다"며 "뇌 안에서 새로운 공간 처리를 반복하는 것이 알츠하이머 예방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어 "우리가 주변을 이동할 때 뇌 안에서는 인지적 공간 지도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담당하는 영역은 알츠하이머 발병에도 관여한다"며 "뇌가 늘 다른 패턴의 공간 처리를 실시간으로 해야 하는 택시나 구급차 운전자는 다른 직업보다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뇌신경학자들은 인간의 뇌 어딘가에 내비게이션이나 전지구측위시스템(GPS) 역할을 하는 영역이 있다고 본다. 연구팀은 택시나 구급차 운전사는 해마 등 뇌 영역에서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나며, 이것이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비샬 파텔 박사는 "이번 연구가 택시, 구급차 운전자들의 생활 패턴과 뇌 건강의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며, 정해지지 않는 코스를 자주 운전한다고 알츠하이머를 예방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다만 박사는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은 택시 운전과 같은 공간 지각과 기억력, 뇌 내비게이션 기능이 필요한 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실험에서 인과관계가 명확해지면 알츠하이머 예방이나 치료에 대한 새 접근법을 고안될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