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다키아 민족의 황금투구가 해외 전시 도중 도난됐다. 대담한 수법으로 박물관 문을 폭파한 도둑들은 범행 닷새째 행방이 묘연하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네덜란드 북동부 아센에 자리한 드렌트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약 2500년 전 루마니아 다키아 민족의 생활상을 조명한 기획전 '다키아: 금과 은의 제국'을 진행 중이었는데, 25일 심야(현지시간)에 복면 절도범 3명이 정문을 폭파하고 난입, 황금투구와 팔찌 등 4점을 훔쳐갔다.
도난된 전시품은 루마니아 국보다. 그 유명한 코초페네슈티 황금투구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정체성으로 불리는 귀중한 유물이다. 팔찌들 역시 루마니아 일부와 주변국에 살았던 다키아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보물로 고고학 및 역사학, 인류학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다키아인은 기원전 수세기부터 기원 2세기에 걸쳐 현재의 루마니아와 몰도바, 헝가리 일부를 지배한 고대 민족 트라키아인계 부족이다. 로마인도 까다로워한 타고난 전사로, 로마제국이 서기 106년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할 때까지 용감하게 싸웠다.
보물들은 '다키아: 금과 은의 제국' 전시 폐막 단 하루를 남기고 사라졌다. 루마니아 문화부 승인을 받고 어렵게 보물을 대여한 드렌트 박물관은 물론 네덜란드 정부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 됐다. 유물들 모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세계적인 보물이기 때문이다.
학계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드렌트 박물관 관계자는 "코초페네슈티 투구는 1920년 루마니아 중부 프라호바에 폭우가 내린 뒤 아이들이 우연히 파내 한동안 방치됐다"며 "1929년 프라호바의 상인이 투구를 사들인 후 루마니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고 나서야 가치가 입증됐다"고 전했다.

이어 "순금판 3장을 이어 붙인 이 투구에는 부릅뜬 두 개가 새겨졌는데, 악마를 물리치는 영험한 능력의 깃들었다고 다키아 민족은 생각했다"며 "그리스와 이집트 등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도 엿보이는 투구의 한쪽에는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남성이 새겨져 있다"고 덧붙였다.
금팔찌에 대해 이 관계자는 "고대 다키아의 수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나선 모양의 대담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라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런 보물들은 팔아넘길 수 없기 때문에 범인들은 아마 녹여서 금괴로 만들 텐데, 되돌릴 수 없는 비극만은 막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