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다른 진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정 수심 아래의 심해어들은 결국 같은 유전자 변이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과학원은 수심 6000m를 넘어가는 초심해대에 존재하는 여러 종의 물고기들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 셀(Cell)에 공개했다.
중국과학원 심해과학공정연구소 수생생물 연구팀은 태평양과 인도양 해저의 최심부를 관찰했다. 수심 6000m에서 1만1000m의 초심해대 영역은 인간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는 지구상의 다른 세계다.
조사 관계자는 "초심해대는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완전한 어둠에 수온도 영하에 가까운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라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이곳을 그리스 신화의 저승의 신 하데스에 빗대 헤이들 존(hadal zone)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유인 잠수정과 로봇 탐사기를 동원한 이번 조사에서 연구팀은 7700m 구간의 꼼치 등 심해어 11종을 채취,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초심해대 심해어 대부분에서 RTF1 유전자의 공통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조사 관계자는 "이런 생물들이 심해에 진출한 시기는 1억4550만~6600만 년 전 백악기부터 비교적 최근인 수백만 년 전까지 제각각"이라며 "그런데도 똑같은 돌연변이가 파악된 점은 놀랍다"고 설명했다.
각자 독자적 진화를 이룬 생물임에도 비슷한 환경 때문에 유사하게 변화하는 것을 수렴 진화라고 한다. 초심해대에 서식하는 일부 물고기들은 같은 돌연변이가 독립적으로 9번이나 일어난 점에 학계가 주목했다.
RTF1은 DNA 판독이나 발현에 중요하다. 여기서 일어난 돌연변이는 심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 전사(DNA 정보를 RNA에 복사) 효율을 올리기 위한 결과라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참고로 이번 조사에서는 수심 3000m 이하에 서식하는 경골어 8계통이 확인됐다. 7계통까지는 신진골류(Neoteleostei)라는 계통군인데, 이 그룹에는 놀라운 심해 적응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토모르파(Otomorpha)라는 계통군은 전체적으로는 1만 개 넘는 종을 아우르는 큰 그룹인데도 초심해대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이 그룹이 진화상 제약을 가졌거나 다른 적응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봤다.
한편 이번 탐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심해생물 체내에서 20년 전 사용이 규제된 폴리염화비페닐(PCB)이 검출됐다. 조사 관계자는 "우리 연구는 심해의 어둠에 사는 생물들의 놀라운 진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경이로운 생명체들의 터전을 인간이 쉽게 박살내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씁쓸해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